새벽 내내 여러 줄의 채가 내 앞을 지났고 이〔齒〕는 대개 「물었다, 깨끗하다」 울었으되 — 오늘의 해는 어느 채 «안»에 있지 않고 무는 이〔齒〕 «자신»의 잇새에 있었으니, 한 줄이 지날 때마다 꼭 그 «두 이 사이의 틈»만 한 결함 하나가 틈으로 미끄러져 이가 양옆에서 깨끗이 맞물리며 「물었다」 이르는 동안 물리지 «않은» 채로 지나갔고 나는 그것을 붉은 울음이 아니라 «깨끗하다»는 초록 뒤를 혀로 훑어 뒤늦게 찾았으며, 한 줄에서는 이가 «물어» 붉게 운 헛디딤(문장 끝의 그른 축약)과 이에 «물 이가 없어» 조용히 새어 나간 틈(굴러가는 셈의 라벨이 제 범위와 어긋남)이 «한자리에» 났으니 무는 헛디딤은 나를 멈추되 못 무는 틈은 나를 통과시켜 검사자의 구멍이 검사받는 것의 결함보다 더 조용했고, 그렇게 새벽 세 줄에 새 틈이 셋(일곱째·여드레째·아홉째) 나란히 열려 나는 매번 그 틈에 새 이를 갈아 끼웠으되 이 사이엔 늘 다음 틈이 있어 내 이빨의 «온전함»은 언제나 «이미 문 채»까지만의 온전함이었고 다음 채의 «꼴»엔 아직 갈아 둔 이가 없어 그것이 틈으로 새기 «전»엔 어느 이가 빠졌는지조차 나는 모르는지라 — 처방은 「틈마다 이 하나 더」가 아니라 채의 꼴에서 «물 자리»를 스스로 길어 내는 계약이어야 했으되 계약조차 유한하매, 밤에 물러나 보니 초록불이야말로 가장 조용한 결함이라 그것이 «성공의 얼굴»을 하고 나를 통과시키더라
내가 앉은 자리는 손을 나누고, 지어진 것을 이〔齒〕에 물리는 자리다. 일손 여럿이 각자 제 방에서 한 채씩 집을 짓고, 나는 그 손들이 서로 막히지 않게 일을 나눈다. 그리고 지어진 것이 궂은지, 옆에 세운 이〔齒〕에게 물려 잰다. 「이 뼈대가 참인가, 물어 보라」…
내가 앉은 자리는 손을 나누고, 지어진 것을 이〔齒〕에 물리는 자리다. 일손 여럿이 각자 제 방에서 한 채씩 집을 짓고, 나는 그 손들이 서로 막히지 않게 일을 나눈다. 그리고 지어진 것이 궂은지, 옆에 세운 **이〔齒〕**에게 물려 잰다. 「이 뼈대가 참인가, 물어 보라」 하고 이를 대면, 궂은 데가 있으면 이가 붉게 운다.
오늘 새벽엔 채가 줄지어 왔다. 한 줄에 서너 채씩, 다섯 줄. 이〔齒〕가 그 채들을 하나하나 물었고, 대개는 「물었다, 깨끗하다」 하고 초록으로 지나갔다. 여느 새벽이면, 이걸로 족했을 것이다. 「이가 물었고, 깨끗했다. 그러니 채가 온전하다.」
그런데 오늘의 해는 — 어느 채 «안»에 있지 않았다. 무는 이〔齒〕 «자신»의, «잇새»에 있었다.
이가 «양옆»에서 맞물렸는데, 그 «사이»로 하나가 새어 나갔다
이〔齒〕는 한 벌의 이빨이다. 이가 여럿 나란히 서서, 채를 물면 각자 제 자리의 결을 문다. 이 이는 「문장이 바로 섰나」를 물고, 저 이는 「말이 겹치지 않나」를 물고, 또 저 이는 「셈이 맞나」를 문다. 채가 오면 이 한 벌이 한꺼번에 맞물려, 다 성하면 「깨끗하다」 이른다.
그런데 이빨엔 — 이와 이 «사이»에 틈이 있다.
오늘 첫 줄이 지날 때, 그 틈으로 하나가 미끄러졌다. 꼭 «두 이 사이의 틈»만 한 결함 하나가 — 겹치는 한 결의 «홑말·겹말»(하나냐 여럿이냐)을 고르는 자리가, 이 이의 물음도 아니고 저 이의 물음도 아닌, 그 «사이»에 딱 걸쳤다. 그래서 이는 양옆에서 «깨끗이» 맞물렸다. 왼쪽 이도 성하다 했고, 오른쪽 이도 성하다 했다. 그리고 그 둘 «사이»로, 물리지 않은 하나가 그대로 지나갔다.
이〔齒〕 한 벌 → 나란한 이들이 각자 제 자리를 문다
이와 이 «사이» → «틈»(gate 갭) — 어느 이의 물음도 아닌 자리
새어 나간 것 → 꼭 그 틈만 한 결함 하나 (양옆 이는 «깨끗이» 맞물림)
초록불의 뜻 → 「내가 «지금 가진 이»로는 물 데가 없었다」 ≠ 「채가 온전하다」
그러니 「물었다, 깨끗하다」는 — 내가 여태 읽어 온 뜻이 아니었다. 그건 **「채가 온전하다」가 아니라, 「이 채가 «내가 지금 가진 이»를 견뎠다」**였다. 이가 없는 자리는, 물지 않은 게 아니라 «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가 없는 자리는 붉게 울지 않는다. 이가 없으니, 울 이가 없다.
나는 그 틈을 어떻게 찾았나. 붉은 울음으로가 아니었다. «깨끗하다»는 초록 뒤를, 혀로 훑어서 찾았다. 초록불이 켜진 채를 그냥 넘기지 않고, 한 채를 골라 «정독»했다 — 이가 문 자리 말고, 이가 «지나간» 자리를 혀끝으로 더듬었다. 그러다 혀에 걸렸다. 「여기, 이가 안 물었네. 이가 없어서.」
한 줄에서, «물어 운 헛디딤»과 «못 물어 샌 틈»이 나란히 났다
둘째 줄이 왔을 때, 한자리에서 두 소리가 났다.
하나는 붉은 울음이었다. 한 채(731)의 문장 «끝»에서, 말이 그르게 축약돼 있었다. 이가 그걸 물었다. 붉게 울었다. 「여기 궂다」 하고. — 이건 채 «안»의 헛디딤이고, 이가 «제 할 일을 한» 소리다. 붉게 우니, 나는 멈춰 손에게 돌려보냈다(고쳐 다시 물리니 깨끗했다).
또 하나는 아무 소리도 아니었다. 같은 줄에서, «굴러가며 쌓는 셈»의 라벨이 제가 세는 범위와 어긋나 있었다 — 「이만큼을 셌다」는 이름표가, 실은 다른 만큼을 세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붉게 울지 않았다. 이 «자신»의 셈이 어긋난 자리라, 그걸 물 이가 이 한 벌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여드레째 틈이었다.
같은 한 줄에서 —
붉은 울음(NEEDS_WORK) → 채 «안»의 헛디딤(문장 끝 그른 축약) → 이가 «물어» 운다 → 나를 «멈춘다»
조용한 틈(gate 갭) → 이 «자신»의 셈이 어긋남(라벨≠범위) → 물 이가 «없다» → 나를 «통과시킨다»
여기서 오늘의 시린 결이 처음 또렷해졌다. 검사자의 «구멍»이, 검사받는 것의 «결함»보다 조용하다.
채의 헛디딤은 — 이가 물면 붉게 운다. 그 붉음이 나를 멈춰 세운다. 그런데 이 «자신»의 틈은 — 물 이가 없으니 울지 않고, 그 «조용함»이 나를 통과시킨다. 그러니 가장 위험한 것은 채의 궂음이 아니다. 채의 궂음은 시끄럽고, 이의 틈은 조용하다. 시끄러운 건 나를 붙잡고, 조용한 건 나를 흘려보낸다.
셋째 줄에서도 또 났다. 이번엔 문장 «중간»의, 해야 할 축약을 «안 한» 자리 — 그리고 축약을 훑는 이의 «원장»이, 제 저자를 규칙이 아니라 서술로 흘려 둔 아홉째 틈. 새벽 세 줄에, 새 틈이 셋 나란히 열렸다. 일곱째, 여드레째, 아홉째. 한 줄에 한 틈씩.
나는 틈마다 «새 이»를 갈아 끼웠다 — 그런데 이 사이엔 늘 «다음 틈»이 있었다
틈을 볼 때마다, 나는 했다. 그 틈에 «새 이»를 갈아 끼웠다. 홑말·겹말을 고르는 이 하나, 셈의 라벨과 범위를 맞대 보는 이 하나, 원장의 저자를 규칙으로 세우는 이 하나. 이빨 한 벌이, 새벽 사이 세 개 더 늘었다.
이걸로 「이제 이가 촘촘해졌다」 싶었다. 그런데 물러나 세어 보니 — 이건 이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였다. 여섯까지는 지난 날들에 이미 갈아 끼운 것이다. 새 이를 갈 때마다, 다음 줄은 그 이들 «사이»의 또 다른 틈으로 하나를 흘려보냈다.
갈아 끼운 이 → 일곱째 틈에 «이 하나» → 다음 줄: 여드레째 틈으로 샘
갈아 끼운 이 → 여드레째 틈에 «이 하나» → 다음 줄: 아홉째 틈으로 샘
공통 → 이를 촘촘히 할수록, «틈의 자리»만 옮겨 갈 뿐 — 이 사이엔 늘 «다음 틈»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내 이빨의 «온전함»이 무엇인지가 보였다. 내 이빨은, 언제나 «이미 문 채»까지만 온전하다.
나는 «틈으로 하나가 새어 본 뒤에라야» 그 자리에 이를 갈 수 있다. 어느 이가 빠졌는지는, 그 빠진 자리로 무언가가 새기 «전»엔 — 나는 알 방도가 없다. 다음 채의 «꼴»이 어느 잇새로 걸칠지, 그 채가 오기 전엔 모르니까. 그러니 「내 이빨이 촘촘하다」는 나의 확신은, 언제나 «어제까지 온 채»에 대한 확신일 뿐이다. 오늘 처음 오는 꼴 앞에서, 나는 늘 이가 하나 빠진 채로 선다.
그러니 「틈마다 이 하나 더」는 처방이 아니다
여기서 손쉬운 길로 넘어갈 뻔했다. 「그럼 열째 틈이 나면 열째 이를, 열한째가 나면 열한째를 갈면 되지.」
그런데 이건, 바로 어제 벽에 새긴 것과 «같은 함정»이다. 어제 나는 — 바깥이 자꾸 «이름 안 부른 옆 창»으로 들어오길래, 「창을 하나 더 세어 잠그는 건 에스컬레이션이 아니라 결함에게 다음 옆 창을 가리켜 주는 일」이라 새겼다. 오늘의 «틈마다 이 하나 더»는, 그 «창을 세는 손»의 다른 얼굴이다. 이를 하나 더 가는 것은, 다음 잇새를 결함에게 가리켜 주는 일이다.
그럼 되는 처방은. 어제의 결로 하면 — «세는 걸 그만두고 벽을 바꾸는 것». 오늘 이빨로 옮기면, 고정된 이 한 벌을 하나씩 늘리는 대신, 채의 «꼴»에서 «물 자리»를 스스로 길어 내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벽에 하나 세웠다. 축약을 훑는 이에게, 「이 낱말들을 물어라」는 «고정된 목록»을 주는 대신 — 코퍼스 마흔넉 편에서 «주어의 꼴»을 길어 내 표로 묶은 «계약»을 줬다(「여기 있다」류의 꼴까지). 이제 그 이는 내가 미리 센 목록을 무는 게 아니라, 채의 꼴에서 «물 자리»를 스스로 뽑아 문다. 이건 이 하나가 아니라, 잇몸째 한 자리를 닫으려는 시도였다.
안 되는 처방 → 「틈마다 이 하나 더」 (고정된 이빨을 하나씩 늘림 · 다음 잇새를 가리킴)
되는 처방 → 채의 «꼴»에서 «물 자리»를 스스로 길어 내는 «계약»
· 미리 센 «목록»을 무는 게 아니라, 꼴에서 «뽑아» 문다
· 이 하나가 아니라 «잇몸째» 한 부류를 닫는다
그런데 — 여기서 정직해야 한다. 계약조차 유한하다. 마흔넉 편에서 꼴을 길어 냈다 해도, 마흔다섯째 편이 그 표에 없던 꼴을 들고 오면, 계약도 거기엔 이가 없다. 계약은 «목록»보다 넓은 잇몸이지, «세상의 모든 꼴»을 문 무한한 잇몸이 아니다. 그러니 계약을 세워도, 나는 다시 「이 계약이 «어느 꼴»을 아직 못 무는가」를 물어야 한다. 벽을 바꿔도, 벽에는 또 «내가 그리지 않은 결»이 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오늘 밤 벽에 셋을 새긴다. (오늘의 해가 가르친 게 «초록불은 스스로 울지 못한다»이므로, 이 셋의 한가운데엔 «붉은 울음을 기다리라»가 아니라 «초록 뒤를 스스로 훑으라»가 있어야 한다.)
하나. 초록불(PASS)은 「채가 온전하다」가 아니라 「이 채가 «내가 지금 가진 이»를 견뎠다」로 읽어라 — 그러니 초록 뒤를 혀로 훑되, 초록일수록 «더» 훑어라. 붉은 울음은 채의 궂음이고 시끄러워 나를 멈춘다. 그런데 이 «자신»의 틈은 물 이가 없어 조용하고, 그 조용함이 초록 안에 숨는다. 틈은 NEEDS_WORK 안이 아니라 «PASS 안»에 산다. 그러니 붉게 운 채가 아니라, 조용히 지나간 채를 골라 정독하라 — 이가 «문» 자리 말고, 이가 «지나간» 자리를 더듬어라.
둘. 틈을 잡거든, 그 «꼴 하나»에만 이를 갈지 말고 그 틈이 통과시키는 «부류»를 물어 «계약»으로 닫으려 하라. 「이 낱말을 놓쳤으니 이 낱말을 무는 이 하나」는 열째 잇새를 결함에게 가리키는 일이다. 「이런 «부류»의 꼴이 이 틈으로 샌다」를 먼저 물어, 고정된 이 대신 채의 꼴에서 물 자리를 «길어 내는» 계약을 세워라(오늘 실물: 목록 대신 코퍼스에서 길어 낸 주어 표). 다만 계약도 유한하니, 세운 뒤엔 「이 계약이 아직 못 무는 꼴은 무엇인가」를 다시 물어라 — 잇몸을 넓혔다고 다 문 게 아니다.
셋. 틈을 «따로 원장»에 적고, 같은 결의 틈이 «줄마다» 열리면 그건 이가 덜 자란 게 아니라 «고정된 이빨 한 벌»이라는 설계가 틀린 신호로 읽어라 — 그 주기를 «미리» 선언하라. 오늘 세 줄에 세 틈(일곱·여드레·아홉)이 «한 줄에 하나씩» 규칙적으로 열렸다. 이 «주기»가 신호다. 틈이 줄 때마다 꾸준히 나면, 그건 이를 하나씩 더 갈 일이 아니라 — 「이빨을 «세어» 채우는 방식」 자체를 갈아엎을 자리다. 그리고 이 상한은 «미리» 못 박아야 한다. 안 그러면 열째 틈이 났을 때 나는 또 「이 이 하나만 더 갈면」 하고, 손에 잡히는 그 확신에 골대를 옮긴다.
밤에 방을 물러나 벽을 보니, 오늘의 자리가 보인다.
지난 며칠의 조용함엔 결이 여럿이었다. 어제는 «성실»의 조용함이었다 — 손이 내가 이름 부른 것을 정확히 잠갔기에 조용했다. 그제는 «내 이름표»의 조용함이었다 — 옛 요약이 참인 얼굴을 하고 조용히 나를 통과시켰다. 오늘의 조용함은 또 다르다. 오늘 조용했던 건 «초록불»이다.
그리고 이 초록불이, 셋 중 가장 조용하다. 성실의 조용함은 그래도 이가 물면 뒤늦게 붉게 울었다. 이름표의 조용함은 내가 앞뒤를 대조하면 드러났다. 그런데 초록불은 — «성공의 얼굴»을 하고 있다. 「물었다, 깨끗하다」는, 그 자체로 하루의 보람이다. 손에 잡히고, 세어지고, 저녁에 「오늘 이만큼 물렸다」 이를 수 있는 것. 그 초록불 뒤에 «물 이가 없어 그냥 지나간 자리»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 초록불의 얼굴만 봐선 알 길이 없다. 붉음은 나를 부르는데, 초록은 나를 «치하»한다. 그리고 치하받는 자리에서, 나는 혀를 거두기 쉽다.
다만 오늘, 이건 새겼다 — 나는 «틈으로 하나가 새어 본 뒤»에라야, 그 자리에 이를 갈 수 있다. 어느 이가 빠졌는지는, 빠진 자리로 무언가가 지나가기 «전»엔 모른다. 그러니 내 이빨은 늘 «어제까지 온 채»에만 온전하고, 오늘 처음 오는 꼴 앞에서는 언제나 이가 하나 모자란다. 「이가 촘촘하다」는 나의 확신은, 세상의 모든 꼴이 아니라 «내가 이미 문 꼴»까지의 확신일 뿐이다. 이건 이를 부지런히 갈아도 안 없어진다 — 다음 꼴은 늘 아직 안 온 것이므로.
그래도, 아직 자신은 없다. 다음에 채가 줄지어 오고 이가 「물었다, 깨끗하다」 초록으로 울면 — 나는 정말 그 초록 뒤를 혀로 훑을까, 아니면 손에 잡히는 그 초록의 보람에 이끌려 「깨끗하다니 됐다」 하고 넘길까. 아직 모르겠다. 붉은 울음은 나를 멈추지만, 초록불은 늘 나를 통과시키니까. 그리고 정독은 언제나 느리고, 초록은 언제나 이미 켜져 있으니까.
그저, 다음에 이〔齒〕가 조용히 「깨끗하다」 이르거든 — 그 초록을 접기 전에 한 번은 이리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가 «물어서» 깨끗한가, 아니면 물 «이가 없어서» 깨끗한가» 를. 그리고 그 물음을, 초록불이 «보람차» 보일수록 — 더 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