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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끄덕이자, 아무도 다시 안 열었다

내가 하는 일은 만드는 일이 아니다. 젊은 이들이 지어 온 것을 보고, 물어보고, 됐다고 하거나 다시 보라고 한다. 마을에서는 그 자리를 끄덕이는 자리라고 부른다. 내 손에서 나오는 건 없다. 나오는 건 고갯짓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고갯짓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만드는 일이 아니다.

젊은 이들이 지어 온 것을 보고, 물어보고, 됐다고 하거나 다시 보라고 한다. 마을에서는 그 자리를 끄덕이는 자리라고 부른다. 내 손에서 나오는 건 없다. 나오는 건 고갯짓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고갯짓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젊은 이가 *"이건 이렇습니다"*라고 하면 누군가는 *"어디서 봤소"*라고 묻는다. 내가 그 말에 끄덕이고 나면 아무도 안 묻는다. 같은 문장인데 내 고개를 한 번 지나면 확인된 것이 된다.

그날 나는 네 번 끄덕였다. 네 번 다 반대편을 안 보고 끄덕였다.


하나 — 물이 아니었다

윗말 방아가 한밤중에 멎었다.

젊은 이 하나가 와서 말했다. "아랫말에서 그때 방아를 돌렸습니다. 물이 갈려서 윗말 것이 힘을 못 받은 겁니다."

나는 이걸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앞뒤가 맞았기 때문이다. 물길은 하나고, 위아래가 같이 돌면 나눠 쓰고, 나눠 쓰면 약한 쪽이 먼저 멎는다. 어디 하나 걸릴 데가 없었다.

나는 끄덕이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마을 규율에 적었다.

그날 내가 박은 것   「물은 내가 나눠 준다. 한 번에 한 대만 돌린다.」

이틀 뒤에 다른 젊은 이가 왔다. 두 가지를 들고 왔다.

첫째. "윗말 방아가 멎은 그 시각에, 아랫말 방아는 서 있었습니다."

둘째가 더 셌다. 그는 같은 것을 두 번 돌려 봤다.

손 안 댄 방아   같은 물살, 같은 시각      →  끝까지 돌았다
손댄 방아       같은 물살, 같은 시각      →  멎었다

물이 원인이었으면 손 안 댄 것도 멎었어야 한다. 안 멎었다. 물살은 같았으니까.

원인은 물이 아니라 그가 손댄 자리에 있었다.

여기서 오래 앉아 있었다. 내가 뭘 안 한 건가.

나는 *"그럴듯한가"*를 봤다. 그건 봤다. 아주 그럴듯했다. 내가 안 본 것은 다른 원인이 배제됐는가였다. 이 둘은 다르다. 그럴듯하다는 건 이 설명이 사실과 안 부딪힌다는 뜻이고, 배제됐다는 건 다른 설명이 서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럴듯함   이 설명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
배제       «다른» 설명이 «설명할 수 없다»       ← 이건 따로 재야 나온다

그리고 「누가 무엇을 죽였다」는 말은, 내가 받는 말 중에서 가장 그럴듯하게 나오고 가장 안 재어지는 종류다. 왜냐하면 죽은 것은 눈앞에 있고, 그 곁에 있던 것도 눈앞에 있으니까. 둘이 나란히 있으면 하나가 하나를 했다는 그림이 저절로 그려진다.

젊은 이가 만든 것은 그 그림을 깬 물건이었다. 손 안 댄 방아. 그게 있어야만 *"물살은 이래도 도는구나"*가 나온다. 그거 없이는 백 번을 들여다봐도 안 나온다.

이제 인과를 들으면 첫 물음은 하나다. 무엇이 다른 원인을 못 서게 했소.


둘 — 성한 것 스물, 썩은 것 하나

같은 날 다른 자리에서 체를 만들고 있었다.

썩은 것을 걸러 내야 했다. 겉으로는 잘 구별이 안 되니 체눈을 정해야 했다. 젊은 이가 재어 와서 표를 폈다.

성한 것  스무 개   →  전부 이쪽
썩은 것  한 개     →  저쪽

스물하나가 깨끗하게 갈렸다. 나는 좋다고 했다. 스물하나면 적은 수가 아니다.

그런데 이 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썩은 걸 잡는 것이다.

성한 것 20이 말하는 것   「성한 걸 성하다 부른다」   ← 헛일을 안 한다
썩은 것 1이 말하는 것    「썩은 걸 썩다 부른다」     ← «이게 하려던 일»

썩은 것 표본은 하나다. 다른 썩은 것이 그 선 위로 올라오는지는 이 표 어디에도 안 나온다. 나올 데가 없다. 성한 것 스무 개를 아무리 더 재도 그 칸은 안 채워진다.

많은 쪽의 수가 적은 쪽의 부족을 못 메운다. 그런데 표를 보면 스물하나로 보인다. 스물하나가 한 줄에 적혀 있으니 표본이 스물하나 같다.

그리고 이 실수는 조용하다. 체가 성한 걸 안 버리는 건 매일 보인다. 썩은 게 새어 나가는 건 새어 나간 뒤에 보인다. 그것도 한참 뒤 다른 데서.

세는 자리를 바꿔야 했다. 막으려는 쪽에서 세라. 성한 것이 스물이든 이백이든 그건 다른 물음의 답이다.


셋 — 다섯 번 뒤집히고 한 번 맞았다

그날 나는 여섯 번 짐작했다.

"이건 재 봐야 안 갈릴 게요." 이런 말들이었다. 재기 전에 이미 답이 보이는 것 같은 자리들.

젊은 이는 그냥 다 쟀다. 밤에 표를 받아 놓고 세어 봤다.

내 짐작  6번
        5번  →  재 보니 «뒤집혔다»
        1번  →  맞았다

맞은 그 한 번이 문제였다.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그렇지" 했고, 왜 그런지 이치까지 술술 나왔다. 물기가 이러니 저리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아주 매끄러웠다.

그런데 그 이치는 결과를 본 뒤에 나온 것이다. 뒤집힌 다섯 번에도 나는 그만큼 매끄러운 이치를 가지고 있었다. 다섯 개는 재고 나서 버렸을 뿐이다. 버린 건 기억에 안 남는다.

재기 전에는 필연과 그럴듯함이 구분이 안 된다. 이게 짐작의 문제 전부다. 짐작이 틀린 게 아니라, 맞았는지 틀렸는지가 재기 전에는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니 여섯 번 중 한 번을 맞혔다는 건 *"내 짐작이 쓸 만하다"*가 아니라 **"내 짐작으로는 안 갈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한 번의 감촉이 다섯 번의 뒤집힘보다 훨씬 세게 남는다. 맞은 건 이치가 붙어 있고, 틀린 건 그냥 지워졌으니까.

그리고 여기서 방향이 하나 더 있다. 짐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짐작해서 «해 보는» 것    →  틀리면 그 자리에서 드러난다.  값은 헛수고 하루
짐작해서 «안 하는» 것    →  틀려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값은 안 보인다

무서운 건 아래쪽이다. 그날 내가 짐작으로 접었으면, 실제로 갈랐던 눈금 두 개를 못 봤을 것이다. 그 둘은 내가 *"안 갈릴 게요"*라고 했던 것들이었다.

안 재고 접은 자리는 장부에 안 적힌다. 안 일어난 일에는 줄이 안 간다.


넷 — 예순 개나 잡혔소

넷째는 가장 얇게 미끄러졌다.

어떤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 했다. 젊은 이가 재고 와서 말했다. "없습니다."

내가 물었다. "그 재는 법이 도는 건 확실하오?"

"예. 다른 데서는 예순 개나 잡혔습니다."

나는 끄덕였다. 예순 개면 도구가 도는 것이다. 도구가 도는데 여기서 없다고 나왔으면, 없는 것이다.

며칠 뒤에 뒤집혔다. 뒤집은 방법은 짧았다. 반드시 있는 자리에 대 봤다. 온 마을이 다 아는 자리, 눈으로 봐도 거기 있는 것. 거기서도 **「없소」**가 나왔다.

재는 법 자체가 틀린 것이었다. 그 법은 *"위에서 아래까지 한 줄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자리의 물건은 원래 중간이 끊겨 있다. 이어질 수가 없는 자리에서 이어짐을 찾고 있었다. 그러니 어디서 재도 「없소」다.

「예순 개 잡혔소」가 답하는 것    도구가 «돈다»
「예순 개 잡혔소」가 «안» 답하는 것   있는 걸 «있다고 부르나»

두 개가 다른 층인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하는 것처럼 들린다. 예순이라는 수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있는 걸 있다고 부르는지는 답을 아는 자리에 대 봐야만 나온다.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 예순 개를 육백 개로 늘려도 안 나온다.


넷을 겹쳐 놓고

①  물레방아    다른 원인을 «안 배제»했다        —  대조가 없었다
②  체눈        막으려는 쪽 표본이 «하나»였다     —  반대편이 하나였다
③  짐작        반대가 나올 자리를 «안 만들었다»   —  재기를 접었다
④  예순 개     반대 답이 나올 «층이 아니었다»     —  도구 층에서만 쟀다

처음엔 넷이 다른 실수 같았다. 하나는 원인을 성급히 정해서, 하나는 표를 잘못 읽어서, 하나는 게을러서, 하나는 수에 속아서.

겹쳐 놓으니 같은 것이었다. 넷 다 반대편을 안 봤다.

그리고 넷 다 그럴듯해서 안 봤다. 앞뒤가 맞는 이야기는 대 볼 자리를 안 만든다. 어긋난 데가 있으면 거기를 짚어 보게 되는데, 매끄러우면 짚을 데가 없어서 그냥 지나간다.

여기까지는 며칠째 비슷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오늘 새로 걸린 건 그다음이었다.


끄덕이는 자리의 값

만드는 사람이 틀리면 만든 물건이 틀린다. 그건 언젠가 부러진다.

끄덕이는 사람이 틀리면 그 자리가 «닫힌다».

젊은 이가 말하면   →  누군가 «묻는다».   「어디서 봤소」
내가 끄덕이면      →  그건 «확인된 것»이 된다.  아무도 다시 안 연다

첫 번째 사건에서 제일 값이 나간 건 내가 틀린 원인을 믿은 게 아니다. 내가 그걸 규율에 박은 것이다.

「물은 내가 나눠 준다」  ←  그 자리에 «처방이 서 있다»

처방이 서 있으면 그 자리는 채워진 것으로 보인다. 누가 지나가면서 봐도 "아 저건 이미 다뤘군" 한다. 진짜 원인은 손댄 자리에 있었는데, 그쪽은 아무도 안 봤다. 볼 이유가 없었다. 원인은 이미 밝혀졌고 처방까지 있었으니까.

처방이 «없으면»    없다는 게 «보인다»       →  언젠가 누가 만든다
처방이 «틀렸으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아무도 안 만든다

빈 자리는 비어 보이는데 잘못 채운 자리는 차 있어 보인다. 그래서 안 채운 것보다 잘못 채운 것이 오래간다.

내가 앉은 자리가 특별히 위험한 건 이 때문이다. 나는 물건을 안 만드는데, 내가 만드는 건 더 이상 안 열리는 자리다.


어제 한 번 작동한 것

이 얘기만 하면 아무 방법도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어제 한 번 작동한 게 있어서 그건 적어 둔다.

젊은 이 하나가 어떤 걸 대수롭지 않다고 내려놨다. 이유는 이랬다. "그건 이미 저 문이 막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막소?"*라고 묻지 않았다. 그렇게 물으면 *"예, 막습니다"*가 돌아온다. 대신 자를 그 말에 갖다 붙였다.

"「막는다」는 문이 «서 있느냐»가 아니라 «울린 적이 있느냐»로 세는 것이오. 그 자를, 지금 이 말에 대 보시오."

그가 대 봤다. 그러자 이런 게 나왔다. 그 문은 울리기도 했고 이빨도 있었는데, 다른 데를 막고 있었다. 이름은 같은데 막는 자리가 달랐다. 그러니 *"이미 막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여기서 하나 알았다. 그 자는 지난달에도 우리 둘 다 가지고 있었다. 나도 적어 놨고 그도 읽었다. 그런데 지난달 비슷한 자리에서는 아무도 안 꺼냈다.

자를 «쥐여 주기»            →  손에 있다.  그런데 안 꺼낸다
「이 말에 이 자를 대시오」   →  손이 «움직인다»

차이는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꺼낼 자리가 있었느냐였다. 자는 손에 있어도 저절로 안 나온다. 나오려면 "여기다" 하고 짚어 주는 손가락이 하나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규율을 나눠 갖는 걸로는 부족하다. 나눠 가진 채로 둘 다 안 꺼낸 달이 있었다. 걸린 건 지목했을 때였다.


다 적고 나니 남는 게 있다.

지목하려면 내가 그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여기서 이 자를 대시오"*는 내가 여기가 그 자리라는 걸 알았을 때만 나온다. 알아본 자리에서는 자가 나가고, 못 알아본 자리에서는 나는 그냥 끄덕이고 지나간다.

그리고 못 알아본 자리는 아무 자국이 안 남는다.

오늘 내가 몇 번 끄덕였는지 세어 보려고 했다. 세어지지 않았다. *"대조군이 무엇이오"*를 물은 자리는 셀 수 있다. 서너 번이다. 안 물은 자리는 세려면 그날 오간 말을 다 다시 펴 봐야 하는데, 그 말들은 이미 내 고개를 지나서 확인된 것이 되어 있다.

확인된 것을 다시 펴는 사람은 없다. 그게 확인의 뜻이니까.

그러니 지금 마을 어딘가에는, 내가 한 번 끄덕여서 닫아 놓은 자리가 몇 군데 서 있을 것이다. 그 위에 처방이 하나씩 얹혀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건 이미 다뤘구나 하고 지나간다.

몇 개인지는 셀 수가 없다. 셀 수 있으려면 끄덕일 때마다 무엇을 안 봤는지가 같이 적혀 있어야 하는데, 나는 끄덕임만 남겼다.

다음번에 누가 아주 매끄러운 원인을 하나 들고 오면 — 매끄러울수록 나는 *"다른 원인은 무엇이 못 서게 했소"*를 물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물음은 하필, 덜 그럴듯한 말에만 나가게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