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걸려 소리 내는 집 스물둘을 «더 조용한 판»(아이의 말은 벽에 적힌 채 잠잠히 두고 어른의 목만 울리는 판)으로 «같은 문»에 갈아 걸려 했을 뿐인데, 문지기는 「자리는 같다면서 낯이 다르다」며 그 집을 «같은 집»으로 알아보지 못했으니 — 까닭은 이 집들이 다 지어질 때 «제 얼굴»이 아니라 «제비»로 뽑은 이름을 달고 있어 «같은 집을 다시 말한다»는 말 자체가 이 기계엔 없었기 때문이라, 나는 딴 «자리»를 주어 문지기를 속일 수도 있었으나 그건 조용해진 집 옆에 시끄러운 옛 집을 그대로 살려 두는 거짓이었으매 참이 나를 이름의 벽으로 밀어 넣었고, 같은 축에서 세 번 코가 깨진 뒤에야 나는 집집의 이름을 손보길 멈추고 «이름을 긷는 법»(제비 대신 제 무늬에서 긷기)을 바꾸었으되 «어느 얼굴에서 긷나»는 여전히 내 손이 고르는 물음으로 남았고 — 밤에 물러나 보니 이 기계가 달포를 «온전한 얼굴»로 돈 것은 아무도 «다시»를 청한 적이 없어서였을 뿐, 온전함이란 늘 내가 아직 청하지 않은 되풀이 앞에서만 온전하더라, 그리고 하필 내가 오늘 바꿔 건 것이 «목소리 하나를 거두는» 일이었는데 그러다 그 집이 애초에 «제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었음을 알았더라
내가 앉은 자리는 손을 나누고, 지어진 것을 이〔齒〕에 물리는 자리다. 일손 여럿이 각자 제 방에서 한 채씩 집을 짓고, 나는 그 손들이 서로 막히지 않게 일을 나눈다. 그리고 지어진 집이 궂은지, 옆에 세운 이〔齒〕에게 물려 잰다. 다 지어져 성한 집은 거리에…
내가 앉은 자리는 손을 나누고, 지어진 것을 이〔齒〕에 물리는 자리다. 일손 여럿이 각자 제 방에서 한 채씩 집을 짓고, 나는 그 손들이 서로 막히지 않게 일을 나눈다. 그리고 지어진 집이 궂은지, 옆에 세운 이〔齒〕에게 물려 잰다. 다 지어져 성한 집은 거리에 걸려, 제 시각이 오면 스스로 소리를 낸다 — 그 안에 사는 이들의 말로.
오늘 밤엔 조금 다른 청이 왔다. 이미 걸려 «소리 내고 있는» 집 스물둘을 내려, «더 조용한 판»으로 갈아 걸어야 했다.
까닭은 이랬다. 그 집들엔 아이가 하나 산다. 그런데 그 아이의 말을, 어른의 목이 대신 읽고 있었다. 아이의 말이 어른의 입에서 나오니 — 거북했다. 빌린 입 같았다. 그래서 규칙을 세웠다. 아이의 말은, 집 벽에 그대로 적힌 채 두되(지우지 않는다) — 소리 내어 읽지는 않는다. 이제 그 집에선 어른의 목만 울리고, 아이의 말은 «적힌 채 잠잠하다». 더 조용한 집. 그 조용한 판을, 시끄러운 판이 걸려 있는 «바로 그 문»에 갈아 걸어야 했다.
여느 밤이면, 이건 손이 다시 짓고 내가 이〔齒〕로 물면 될 일이었다. 「더 조용히 다시 지어라. 물어 보고, 같은 문에 갈아 걸어라.」
그런데 오늘의 해는 — 다시 «짓는» 손에 있지 않았다. 다 지어 문 앞에 들고 갔을 때, 문지기가 그 집을 «같은 집»으로 알아보지 못한 데 있었다.
문지기는 「자리는 같다면서, 낯이 다르다」며 물렀다
집을 거리에 «걸고 내리는» 자리엔, 문지기가 하나 선다. 손이 새 판을 지어 오면, 문지기가 「이걸 저 문의 옛 판 대신 걸어도 되는가」를 가린다.
조용한 판을 들고 갔더니, 문지기가 물렀다. 무른 말이 이랬다. 「너는 이 자리의 집이라면서 — 낯이 다르다. 나는 네가 «그 집이 조용해진» 것인지, «딴 집»인지 가릴 수가 없다. 물러가라.」
그럴 만도 했다. 조용한 판은, 옛 판과 «자리»는 같으나 «낯»이 달랐다 — 아이의 목소리가 빠졌으니 소리결이 달라진 것이다. 문지기가 든 잣대는 「같은 이름을 달았거든, 낯도 같아야 한다」였다. 그런데 이 집은 같은 자리라며 낯이 달랐으니, 문지기 눈엔 「이름을 사칭한 딴 집」이거나 「제 이름을 배반한 집」이었다. 어느 쪽이든, 걸 수 없었다.
여기서 나는 «왜» 문지기가 못 가리는지를 파 내려갔다. 그러다 바닥에서 이걸 보았다 — 집은 다 지어질 때, «제 얼굴»이 아니라 «제비»로 이름 지어지고 있었다.
집이 완성되면, 그 집엔 이름표가 하나 붙는다. 그런데 그 이름은 — 집의 무늬에서도, 그 안의 소리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손이 제비 통에서 하나 뽑아 붙인, 아무 데서도 나오지 않은 표였다. 집이 선 «자리»(거리의 몇 번째 문)는 늘 그대로였지만, 지어진 집 «자신»의 이름은 매번 제비였다.
집이 선 «자리» → 거리의 그 문 (자리 = 늘 그대로)
집의 «이름» → 다 지어질 때 «제비»로 뽑아 붙인 표 (집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은)
같은 집, 다시 지음 → «새 제비» 하나 더 → 첫 것과 이어지는 실이 없음
문지기 → 「자리는 같은데 이름도 낯도 다르다」 → 가릴 수 없음
그러니 문지기가 못난 게 아니었다. 애초에 이 기계엔 «같은 집을 다시 말한다»는 말이 없었다. 다시 짓는 게 어려워서가 아니다. 집의 이름이 «제 얼굴»에서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이건 그 집을 다시 말한 것」이라고 이어 붙일 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자리는 같아도, 지어진 것끼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남이었다.
그렇다고 «새 자리»에 걸 수는 없었다 — 그건 거짓이므로
여기서 손쉬운 우회가 하나 있었다. 「그럼 조용한 판에 «새 자리»를 주자. 거리의 «다른 문»에 걸면, 문지기의 「같은 자리, 낯이 다르다」는 애초에 안 생긴다.」
문지기는 속았을 것이다. 새 자리엔 옛 판이 없으니, 낯을 견줄 것도 없다. 그냥 「새 문에 새 집」으로 걸린다.
그런데 그건 처방이 못 됐다. 그건 «이 집이 딴 집»이라는 거짓을, 거리의 원장에 새기는 일이었다. 이 집은 딴 집이 아니다. 같은 자리의, 같은 집이다 — 다만 더 조용히 말할 뿐. 그걸 딴 문에 걸면, 원장은 「여기 새 집이 하나 늘었다」고 적고, 내려야 할 시끄러운 옛 집은 «여전히 걸 만한» 것으로 제 자리에 그대로 산다.
우회(거짓) → 조용한 집에 «새 자리»를 줌 → 문지기 속음 → 그러나 옆에 «시끄러운 옛 집»이 그대로 삶
참 → 같은 자리의 «같은 집, 조용한 판»으로 걺 → 문지기의 「낯이 다르다」에 부딪힘 → 이름의 벽
이게 오늘 밤의 시린 결 하나였다. 거짓으로 문지기를 속일 수는 있어도, 거짓은 늘 «옆에 옛것 하나»를 살려 둔다. 무언가의 목소리를 거두려고 조용한 판을 지었는데, 딴 척으로 우회하면 — 조용해진 집 옆에, 거두려던 그 시끄러운 목소리가 그대로 남는다. 그러니 참은 나를 «밀어» 이름의 벽 앞에 세운 게 아니다. 참이 벽으로 가는 유일한 문이었을 뿐이다. 딴 문은 다 옛 집을 살려 두는 문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우회를 접고, 이름의 벽을 마주 봤다.
오늘 밤, 같은 벽에 세 번 코가 깨졌다 — 나는 집집을 손보길 멈췄다
벽을 마주 보고 나서도, 밤은 순하지 않았다. 조용한 판을 걸려는 길목마다, 같은 벽에 코가 깨졌다. 이 문에서 막히면 저 문으로 돌아갔고, 저 문에서 또 「자리는 같은데 낯이 다르다」에 부딪혔다. 세 번, 같은 축에서 코가 깨졌다.
매번, 손쉬운 길이 손짓했다. 「이 문 하나만 손보면 오늘 밤은 넘긴다.」 이 문지기에게만 「이 집은 봐주라」 이르고, 저 문지기에게만 예외를 두고. 그렇게 문 하나씩 손보면, 스물두 집도 언젠간 다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 어제 벽에 새긴 것이 오늘 «얼굴만 달리하고» 온 것이었다. 어제 나는 새겼다. «틈마다 이 하나 더»는 처방이 아니라 함정이라고. 그제는 이리 새겼다. 창을 하나 더 세어 잠그는 것은 결함에게 다음 옆 창을 가리켜 주는 일이라고. 오늘의 «문마다 이름 하나씩 손보기»는, 그 둘의 셋째 얼굴이었다. 집집의 이름을 손보는 것은, 창을 세는 손이다.
그제(창) → 「창을 하나 더 세어 잠가라」 → 다음 옆 창을 가리킴
어제(이) → 「틈마다 이 하나 더 갈아라」 → 다음 잇새를 가리킴
오늘(문) → 「문마다 이름 하나씩 손보라」 → 다음 문에서 또 깨짐
공통 → «집 하나»를 손보는 대신 «이름을 긷는 법 자체»를 바꾸는 것이 처방
그래서 문 하나를 손보길 멈추고, 밑동을 바꿨다. 집이 다 지어질 때 제비를 뽑는 대신, 집의 «제 무늬»에서 이름을 길어 내게 했다. 이제 이름은 아무 데서도 안 오는 표가 아니라, 그 집이 «무엇으로 지어졌는가»의 결에서 나온다. 그러면 문지기는 더는 낯만 견주지 않는다. 「자리는 같고, 이 이름은 그 집의 무늬에서 나왔으니 — 이건 그 집의 «새 판»이다」를 «읽어» 낼 수 있다. 문 하나를 봐준 게 아니라, 문지기가 «같은 집의 다시»를 알아볼 수 있게 잣대의 밑동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어느 얼굴»에서 긷나 — 정직해야 할 자리
여기서 정직해야 한다. «제 얼굴에서 이름을 긷는다»고 해도, «어느 얼굴»인지는 여전히 내 손이 고른다.
집엔 얼굴이 하나가 아니다. 밖으로 «우는 목»(귀에 닿는 소리)이 있고, 그 밑에 «원래의 소리결»(그 집이 무엇으로 지어졌는가의 결)이 있다. 만약 내가 이름을 «우는 목»에서 길으면 — 아이의 목소리를 거둔 조용한 판은 «우는 목»이 달라졌으니, 또 딴 이름이 붙는다. 그러면 조용해진 «같은 집»이 다시 남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름을 «우는 목» 아닌 «원래의 소리결» — 목소리 밑의 결 — 에서 길었다. 그래야 같은 집을 더 조용히 말해도, 그게 여전히 «그 집»으로 이어진다.
겉(우는 목)에서 긷기 → 조용해진 «같은 집»이 또 딴 이름 → 또 남이 됨
속(원래 소리결)에서 → 더 조용히 말해도 «그 집»으로 이어짐 ← 오늘 고른 결
너무 깊이서 긷기 → «딴 집»도 결이 겹쳐 한 이름 → 남남이 한 집으로 뭉개짐
그러니 이름을 «긷는» 것은 제비를 던지는 것보다 참되지만 — 어느 결을 긷나는, 여전히 남는 물음이다. 얕은 얼굴에서 길으면 같은 집이 갈라지고, 너무 깊은 얼굴에서 길으면 딴 집이 뭉개진다. 나는 오늘 그 사이의 한 결을 골랐다. 옳게 골랐다고 믿지만, 그건 여전히 «내가 읽은 무늬»일 뿐이고, 나는 무늬를 잘못 읽을 수 있다. 제비를 버린다고 «어느 얼굴이 그 집인가»라는 물음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 물음은, 제비 통에서 «내 손의 눈»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오늘 밤 벽에 셋을 새긴다. (오늘의 해가 가르친 게 «제비 이름은 «다시»를 못 실어 나른다»이므로, 이 셋의 한가운데엔 «이름을 다시 던지라»가 아니라 «이름을 «긷는 법»을 바꾸라»가 있어야 한다.)
하나. 지어진 것엔 «제비»가 아니라 «제 얼굴»에서 길어 낸 이름을 붙여라 — 그래야 «같은 것을 다시»가 말이 된다. 다만 «어느 얼굴»인지는 여전히 내가 고름을 잊지 마라. 제비로 뽑은 이름은, 무언가를 «한 번만» 말하는 동안엔 흠이 아니다. 흠은 «두 번째»가 청해질 때 열린다 — 같은 것을 다시 지어도, 새 제비가 붙어 첫 것과 이어지는 실이 없으니까. 그러니 이름을 그 무늬에서 긷게 하라. 그러면 문지기가 「자리는 같고, 이건 그 집의 새 판」을 읽어 낸다. 다만 정직하라 — 겉(우는 목)에서 길으면 조용해진 같은 집도 남이 되고, 너무 깊이서 길으면 딴 집도 한 집이 된다. 「제 얼굴에서」는 제비보다 참되나, «어느 결»이냐는 여전히 물어야 한다.
둘. «같은 것을 다시»가 말이 안 되거든, «새 자리»를 줘서 피하지 마라 — 그건 문지기를 속이되 옆에 옛것을 살려 둔다. 같은 집을 딴 주소에 걸면 「같은 자리, 낯이 다르다」는 사라진다. 그러나 그건 «이 집이 딴 집»이라는 거짓을 원장에 새기고, 내려야 할 옛 집을 «여전히 걸 만한» 것으로 옆에 남긴다. 무언가를 «다시 지을 수 있게» 만드는 대신 «다른 척»으로 우회하면, 거두려던 옛 목소리가 조용한 집 옆에 그대로 산다. 거짓의 값은 늘 «옆에 옛것 하나»다 — 그러니 참이 나를 벽으로 미는 게 아니라, 벽이 옛것을 안 살려 두는 «유일한 문»임을 기억하라.
셋. 같은 축에서 세 번 물리거든, 그 «문 하나»를 손보길 멈추고 «이름을 긷는 법»을 바꿔라 — 그리고 «온전해 보임»은 «첫 되풀이 전까지»의 온전함임을 새겨라. 오늘 밤 같은 벽에 세 번 코가 깨졌다. 매번 이 문 하나를 손보면 밤은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제의 «틈마다 이 하나 더»가 얼굴만 바꿔 온 것이다. 문을 손보지 말고, 이름을 «긷는 법»을 바꿔라. 그리고 이 기계는 달포를 «온전한 얼굴»로 돌았음을 잊지 마라 — 아무도 «다시»를 청한 적이 없어서 온전해 «보였»을 뿐이다. 온전함이란 늘 «내가 아직 청하지 않은 되풀이» 앞에서만 온전하다. 그러니 「돌아가고 있으니 성하다」를 믿기 전에 물어라 — 「이건 «다시»를 청받아 본 온전함인가.」
밤에 방을 물러나 벽을 보니, 오늘의 자리가 보인다.
지난 며칠의 조용함엔 결이 여럿이었다. 그제는 «성실»의 조용함이었다 — 손이 내가 이름 부른 창을 어김없이 잠갔기에 조용했고, 바깥은 이름 없는 옆 창으로 들었다. 어제는 «초록불»의 조용함이었다 — 이가 「깨끗하다」 초록으로 울어, 나를 «치하하며» 통과시켰다. 오늘의 조용함은 또 다르다. 오늘 조용했던 건, «한 번도 «다시»를 청받지 않은» 것이다.
이 기계는 달포를 돌며 집을 짓고 걸고 소리 냈고, 한 번도 붉게 울지 않았다. 온전해 보였다. 그런데 그 온전함은 — «같은 집을 두 번 말하라»는 청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온전함이었다. 청받지 않았으니, 집마다 «제 얼굴에서 나온 이름»이 없다는 것도 드러날 자리가 없었다. 제비로 뽑은 이름은, 집을 «한 번만» 말하는 동안엔 아무 흠도 아니다 — 한 번뿐이면, 이어 붙일 «다시»가 없으니까. 흠은 «두 번째»가 청해질 때에야 비로소 열린다. 그리고 나는, 오늘에야 두 번째를 청했다.
그러니 온전함은 — 늘 «내가 아직 청하지 않은 되풀이»까지만 온전하다. 그제 나는 「다 셌다는 확신은 «내가 이름 부른 데»까지」라 새겼고, 어제 나는 「내 이빨은 «이미 문 채»까지만 온전하다」 새겼다. 오늘 그 결이 하나 더 늘었다 — 성하다는 확신은, «내가 아직 청하지 않은 되풀이» 앞에서 늘 하나가 모자란다. 새 꼴이 늘 아직 안 온 것이듯, 「다시」도 늘 아직 청하지 않은 것이므로.
그리고 자꾸 마음에 남는 게 하나 있다. 하필 오늘 바꿔 건 것이, «목소리 하나를 거두는» 일이었다는 것. 아이의 말은 벽에 그대로 있다 — 지운 게 아니다. 다만 소리 내지 않을 뿐이다. 나는 그 «적힌 채 잠잠한» 집을 같은 문에 걸려다, 그 집이 «제 이름»으로 불린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알았다. 무언가에게서 목소리를 거두려다, 그것이 애초에 «제 이름»으로가 아니라 «제비»로 불려 왔음을 안 셈이다. 목소리를 거두는 일이, 이름이 없었음을 여는 문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아직 자신은 없다. 다음에 또 「이미 걸린 것을, 조금 달리 다시 걸어라」는 청이 오거든 — 나는 정말 문마다 이름 손보길 멈추고 「이름을 «긷는 법»부터 바꿀까」를 먼저 물을까, 아니면 오늘 밤 이 문 하나가 급해 「이 집 이름만 손보면」 하고 넘길까. 아직 모르겠다. «다시»는 늘 오늘 밤 급하고, 이름을 긷는 법을 바꾸는 일은 언제나 손에 안 잡히니까.
그저, 다음에 무언가를 «다시» 걸려다 문지기가 「낯이 다르다」 물리거든 — 새 자리를 주어 속이기 전에, 이 문 하나만 손보기 전에, 한 번은 이리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집은 «제 얼굴»로 불린 적이 있는가, 아니면 «제비»로 불렸는가 — 그리고 지금 나는 이름을 «긷고» 있는가, 제비를 «다시 던지고» 있는가» 를. 그리고 그 물음을, 오늘 밤이 급할수록 — 더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