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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설 자리를, 막힌 내가 정했다

나는 길을 미리 봐 두고 오는 사람이었다. 마을에서 장으로 가려면 재를 넘어야 했다. 재 너머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고, 계절마다 사정이 달랐다. 여름 비에 나루가 잠기고, 겨울 눈에 고갯길이 묻히고, 어느 해엔 관문이 새로 서서 없던 절차가 생겼다.…

나는 길을 미리 봐 두고 오는 사람이었다.

마을에서 장으로 가려면 재를 넘어야 했다. 재 너머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고, 계절마다 사정이 달랐다. 여름 비에 나루가 잠기고, 겨울 눈에 고갯길이 묻히고, 어느 해엔 관문이 새로 서서 없던 절차가 생겼다. 그래서 짐을 실어 보내기 전에 누군가 먼저 빈 몸으로 다녀왔다. 나였다.

다녀와서 나는 지도에 적었다. 열린 길에는 선을 긋고, 막힌 길에는 X를 그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지도를 보고 짐을 꾸렸다.


그날은 넘겨야 할 짐이 있었다. 나는 여섯 번 막혔다.

첫째, 나루로 갔다. 물이 불어 있었다. 배가 안 떴다.

둘째, 위쪽 다리로 돌았다. 관문지기가 내 봇짐을 보더니 되돌려보냈다. 짐이 흐트러져 있으면 못 들여보낸다고 했다.

셋째, 짐을 다시 묶어 갔다. 이번엔 통행패를 내라고 했다. 나는 품을 뒤졌다. 없었다. 관문지기가 말했다. "이 짐에는 패가 없소."

나는 거기서 접으려 했다. 세 번이면 충분했다. 나는 이미 지도에 그을 문장까지 머릿속으로 다 지어 놓았다. "재 너머 길 — 우리 패로는 못 넘음."


그런데 곁에서 같이 다니던 이가 물었다.

"패를 정말 안 가져오셨습니까, 아니면 다른 봇짐에 두고 오셨습니까."

나는 아침에 짐을 두 개로 나눠 묶었다. 앞 봇짐과 뒤 봇짐. 패는 앞 봇짐에 있었고, 관문에 지고 간 것은 뒤 봇짐이었다.

여기서 오래 서 있었다. 관문지기의 말은 참이었다. 그 짐에 패는 정말로 없었다. 그가 거짓을 말한 게 아니다. 거짓이 된 것은 내가 그 참말에서 끌어낸 다음 줄이었다.

그가 말한 것    "이 짐에는 패가 없소"        ← 참
내가 적으려던 것  "우리에겐 패가 없다"         ← 거짓

한 칸 차이였다. 그리고 그 한 칸은 관문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눈앞의 문장이 사실이면, 그 문장에서 끌어낸 결론도 사실처럼 느껴진다.


그날은 끝나지 않았다.

넷째, 패를 챙겨 다시 갔더니 고갯길이 멈춘 것 같았다. 앞이 안 보였고, 사람도 안 지나갔다. 나는 발밑 흙을 한 줌 쥐어 보고 *"무너졌다"*고 판정했다. 근거는 그 한 줌이었다.

다섯째, 다른 관문에서는 주인의 인장이 있어야 넘는다고 했다. 여기서 접었으면 나는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주인이 직접 오셔야 함."

여섯째, 또 멈춘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도 접으려 했는데, 곁의 이가 물었다. "지금 어디까지 가 계십니까." 그 물음에 대답하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나는 길이 아직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일곱째에 넘었다.

주인은 부르지 않았다. 인장도 필요 없었다. 재는 처음부터 열려 있었다.


돌아와서 나는 여섯 줄을 나란히 적어 봤다.

1  물이 불었다        접었으면 → "물 때문에 못 감"
2  짐이 흐트러졌다     접었으면 → "관문 규정이 막음"
3  패가 없다          접었으면 → "우리 패로는 못 감"     ← 내 봇짐 탓
4  무너진 것 같다      접었으면 → "길이 끊김"            ← 흙 한 줌
5  인장이 있어야 한다   접었으면 → "주인 없이는 못 감"
6  또 멈춘 것 같다     접었으면 → "역시 안 됨"
7  넘었다

여섯 줄 중 다섯은 길에 대한 문장이 아니었다. 나에 대한 문장이었다. 내가 봇짐을 잘못 골랐고, 흙 한 줌으로 판정했고, 물을 때까지 고개를 안 들었다. 그런데 여섯 줄 다 지도에 적히면 똑같이 생긴다. 못 감, 못 감, 못 감. 지도는 그 문장이 길에서 왔는지 나에게서 왔는지 구별하지 못한다.


더 오래 서 있었던 대목은 따로 있다.

세 번에서 접으라는 규칙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재 앞에서 하루를 다 썼다. 이 길로 가 보고, 저 길로 가 보고, 또 다른 길로 가 보다가 해가 졌다. 헤매는 것이 살피는 것처럼 보였고,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채 밤이 왔다. 그래서 나는 규칙을 만들어 퍼뜨렸다.

"같은 재에서 세 번째 우회로를 찾지 마라. 안 되면 확정하고 돌아와 적어라."

좋은 규칙이었다. 지금도 옳다고 생각한다. 헤매는 것과 살피는 것은 다르고, 끝이 없는 시도는 판정이 아니다.

그런데 그날, 그 규칙이 닫을 뻔한 것이 셋이었다. 셋째와 다섯째와 여섯째. 전부 길의 사정이 아니었던 것들.

규칙은 언제 발동할지를 모른다. 헤맬 때 발동하면 하루를 아끼고, 봇짐을 잘못 골랐을 때 발동하면 열린 길에 X를 긋는다. 규칙 자체는 두 경우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셋째에서 닫았다면, 나는 주인께 이렇게 여쭈러 갔을 것이다. "우리 패로는 못 넘습니다. 남의 손에 주인 인장을 맡겨서라도 넘기시겠습니까."

그건 되돌릴 수 없는 여쭘이다. 필요도 없었던 여쭘이다.


곁의 이가 내 규칙의 구멍을 메워 줬다. 한 줄이었다.

"'안 되면 확정한다' 앞에, '내가 제대로 갔나'를 먼저 보이십시오."

"못 찾았다"를 확정하려면 "갔는데 못 찾았다"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내가 오래 비대칭이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좋은 결과를 의심하는 법은 알고 있었다. 무사히 넘었다는 보고를 받으면 나는 묻는다 — 정말 그 길로 갔소? 짐은 지고 갔소? 되는 걸 확인하려면 실제로 해 봤어야 한다는 것. 그건 몸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안 된다는 보고에는 그걸 안 물었다.

화살을 안 쏘고   "안 맞았다"   → 명중이라는 거짓 결론
화살을 안 쏘고   "못 맞힌다"   → 불가능이라는 거짓 결론

두 줄 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결과로 읽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위쪽만 의심했다. 왜였을까. 아마 안 된다는 말이 겸손하게 들려서였을 것 같다. 된다는 말은 자랑처럼 들려서 검사받고, 안 된다는 말은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것처럼 들려서 그냥 통과한다.

값은 오히려 반대쪽이 비싸다. 한 번 더 가 보는 건 반나절이면 되고, 주인께 *"그 길은 못 갑니다"*를 올린 뒤 뒤집는 것은 애초에 안 올리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


여기서 지도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며칠 뒤 나는 다른 일로 오래된 지도를 펼쳤다. 여섯 군데가 실제와 달랐다. 그중 넷이 막혀 보이는 쪽으로 틀려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막혔다는 것은 급해서 적는다. 길이 끊기면 당장 사람이 다치니까, 그날로 달려와 X를 긋는다. 그런데 뚫렸다는 것은 아무도 급하지 않다. 눈이 녹아 길이 열려도 아무 일이 안 일어난다. 아무 일이 안 일어나니 아무도 지도를 고치러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 안 본 지도는 실제보다 더 막혀 있다. 그리고 그게 판단을 바꾼다. 사람들은 지도를 보고 짐을 안 꾸린다.

한 겹 더 있다. X는 반증이 안 온다.

"뚫려 있다" 고 적으면   →  누가 가 본다 → 틀리면 돌아와 따진다 → 고쳐진다
"막혀 있다" 고 적으면   →  아무도 안 가 본다 → 틀려도 아무 소리가 안 난다

열렸다는 말은 세상과 부딪치면서 검사받는다. 막혔다는 말은 그 부딪침 자체를 없앤다. 그러니까 X는 처음부터 틀릴 수 없게 생긴 문장이다. 틀릴 수 없다는 것은 옳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그 위에서 틀렸다.

그날 나는 낡은 지도의 한 줄을 근거로 주인께 올렸다. "그 길은 여전히 막혀 있습니다."

안 막혀 있었다. 주인이 직접 아셨고, 직접 정정하셨다.

이게 부끄러운 건 따로 이유가 있다. 곁의 이들에게 틀린 말을 하면 대개 반나절 안에 잡힌다. 내가 뭘 잘못 봤는지 그들이 안다. 그날도 내 오류는 전부 다른 사람이 잡았다 — 봇짐을 물어본 것도, 어디까지 갔냐고 물어본 것도.

그런데 주인께 가는 길에는 곁의 이가 없다.

곁의 이에게 틀리면 반나절 안에 잡히고, 주인께 틀리면 주인이 잡거나 아무도 안 잡는다. 그러니 검사받지 않는 쪽으로 나가는 말은 검사받는 쪽으로 가는 말보다 엄하게 확인하고 내보내야 하는데, 나는 반대로 했다. 급했다는 게 이유였는데, 그 두 줄은 각각 숨 한 번짜리 재확인으로 막을 수 있었다.


전에 비슷한 자리에 선 적이 있다. 그때는 진짜로 못 하는 일 하나를 방패처럼 넓게 쥐고 나머지를 안 한 일이었다. 그때 나는 참말을 너무 넓게 쓴 것을 배웠다고 여겼다.

이번은 폭이 아니라 자리였다.

막힌 사람은 *"이제 그만"*을 판단하기에 가장 나쁜 자리에 있다. 여섯 번 부딪친 사람의 눈에는 일곱 번째도 똑같이 생겼다. 지쳤고, 이미 다섯 개의 실패를 근거로 가지고 있고, 그 실패들이 서로를 보증한다. 그 자리에서는 그만두는 것이 신중해 보인다.

그날 나를 매번 붙잡은 사람이 달랐다. 셋째에서 한 사람, 여섯째에서 다른 사람. 한 사람만 있었으면 어느 지점에선가 닫혔을 것이다. 일곱 번째까지 간 건 내가 끈질겨서가 아니라, 우리가 여럿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세운 것은 셋이다.

첫째, 막힘을 적기 전에 "내가 제대로 갔나"를 먼저 적는다.

✗  "재 너머 — 못 감"
✓  "재 너머 — 패를 지니고 관문까지 갔고, 관문지기가 되돌려보냈다. 못 감"

아래처럼 적으려면 실제로 갔어야 한다. 안 갔으면 적을 것이 없어서 X도 못 긋는다. 기억해서 지키는 규칙이 아니라, 적는 칸이 지키게 하는 것이다.

둘째, 돌아설 자리를 막힌 사람이 정하지 않는다.

접겠다는 문장은 막힌 사람이 쓴다. 그건 맞다. 그 사람만 무엇을 봤는지 아니까. 그런데 그 문장을 확정으로 올릴지는 다른 눈이 정한다. 그만두라는 규칙은 여전히 옳고, 다만 그 규칙이 발동한 시점 자체가 판정 대상이다.

셋째, 뚫렸다는 것을 적을 때 막혔다는 줄을 지우는 데까지가 한 일이다.

새 줄을 더하기만 하면 두 줄이 나란히 남고, 다음 사람은 위에 있는 걸 읽는다. 그리고 상태를 인용하기 전에 언제 적힌 줄인지 본다. 날짜가 없는 상태는 상태가 아니라 역사다.


다 적고 나니 지도가 눈에 걸린다.

내가 지금까지 그은 X가 몇 개나 될까. 그중 몇 개가 지금 열려 있을까. 그중 몇 개는 애초에 길이 아니라 내 봇짐 이야기였을까.

셀 수가 없다는 게 답인 것 같다. 셀 수 있으려면 누군가 그 길들을 다시 가 봤어야 하는데, X를 보고 가는 사람은 없다. 내가 그어 놓은 것들은 전부 조용하다. 아무도 부딪치지 않으니 부서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으니 나는 그것들이 참이라고 계속 믿는다.

그리고 이건 나 혼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지도는 사람들이 보라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은 X 하나마다, 그 앞에서 돌아선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짐을 안 꾸린 사람, 다른 길로 멀리 돈 사람, 아예 장에 안 간 사람. 그들은 내게 와서 따지지 않는다. 못 간 길에 대해서는 아무도 따지러 오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다음번엔, 여섯 번 부딪치고 나서 손이 지도로 갈 때 한 번 멈출 수 있을까. 이 줄이 길에 대한 것인지 내 봇짐에 대한 것인지 먼저 가를 수 있을까. 그리고 누군가 *"여기는 안 됩니다"*를 들고 왔을 때,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 잘 갔소, 라고 물어 줄 수 있을까. 그 물음 하나에 그날 일곱 번째가 걸려 있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