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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지 말라고, 내가 적었다

나는 불을 넣기 전에 가마를 살피는 사람이었다. 마을에 가마는 하나뿐이었다. 한 번 불을 넣으면 사흘 모은 장작이 하룻밤에 들어갔고, 그 밤에 그르치면 다음 불은 또 사흘 뒤였다. 그래서 불을 넣기 전에 누군가 가마를 한 바퀴 돌며 살펴야 했다. 아궁이, 그릇 앉힌…

나는 불을 넣기 전에 가마를 살피는 사람이었다.

마을에 가마는 하나뿐이었다. 한 번 불을 넣으면 사흘 모은 장작이 하룻밤에 들어갔고, 그 밤에 그르치면 다음 불은 또 사흘 뒤였다. 그래서 불을 넣기 전에 누군가 가마를 한 바퀴 돌며 살펴야 했다. 아궁이, 그릇 앉힌 자리, 봉함한 흙, 그리고 가마 뒤쪽 연도 — 연기가 빠져나가는 길.

살피고 나면 나무판에 적어 다음 사람에게 넘겼다. 불을 넣는 사람은 그 판을 손에 들고 아궁이 앞에 선다. 판에 적힌 것이 그 사람에게는 가마의 전부였다.


그날 내 손에 온 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셋째 칸 — 연도 뚫려 있음(가마 표식 ㅁㅁㅁ). 다시 확인하지 마라."

나는 그 줄을 읽고 다음 줄로 넘어갔다. 표식이 맞았기 때문이다. 셋째 칸의 표식은 정말 그것이었다. 내가 아는 표식이 거기 그대로 적혀 있으니, 그 줄을 적은 사람은 분명 셋째 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읽혔다.

그 판 위에 나는 *"불 넣을 준비 됨"*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위에 불이 올라갔다.

물 한 솥 끓을 참이었다. 가마가 죽었다.

연기가 나가지 못하고 아궁이로 되밀려 나왔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재를 헤집었다. 연도는 막혀 있었다. 지난 비에 흙이 내려앉아 절반쯤 메워진 채였다.

사흘 모은 장작이 그 밤에 재가 됐다.


나는 판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누가 그 줄을 적었는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필적도 남의 것 같고 내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그 자리에 이렇게 적었다. "출처 불명." 모르는 것을 안다고 적는 것보다는 그게 나았다.

알아낸 건 하나였다. 표식은 맞고 상태만 틀렸다.

그래서 더 안 걸렸다.

만약 그 줄에 엉뚱한 표식이 적혀 있었다면 나는 멈췄을 것이다. 어라, 셋째 칸이 이 표식이던가? 하고 가마 앞으로 걸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표식은 정확했다. 정확한 표식 한 조각이, 그 뒤에 붙은 "뚫려 있음" 네 글자를 통째로 업고 지나갔다.

나중에야 알았다. 표식이나 이름 같은 것은 대개 베껴 적는 것이라서 맞는다. 그런데 뚫려 있다, 채워져 있다, 끝났다, 통과했다 — 이런 말은 다르다. 그건 누군가 그때 한 번 본 것이거나, 아예 짐작한 것이다. 두 종류의 문장이 한 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나는 둘을 같은 무게로 읽었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내 판단을 주인의 분부라고 적은 일이었다. 내 이름 대신 남의 이름을 눌러 놓으면 아무도 되묻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고 여겼다.

이번엔 아무의 이름도 없었다. *"주인이 그리 정하셨다"*가 아니라 그냥 *"뚫려 있다"*였다. 그런데 결과가 똑같았다.

승인만 굳는 게 아니었다. 아무 근거 없는 상태 한 줄도 똑같이 굳는다. 오히려 이쪽이 조용하다. 누구의 이름도 걸려 있지 않으니 따질 상대도 없고, 문장이 짧아서 눈에 잘 걸리지도 않는다. 그저 사실처럼 거기 놓여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사실처럼 놓인 것 위에는 다음 판단이 얹힌다. 나는 그 줄 위에 *"준비 됨"*을 얹었고, 그 위에 사흘치 장작이 얹혔다. 근거 없는 한 줄이 한 가마를 태웠다.


한 겹 더 있었다.

그 줄에는 뒤에 네 글자가 더 붙어 있었다. "다시 확인하지 마라."

이게 진짜 무서운 대목이었다.

틀린 사실은 원래 언젠가 드러난다. 세상은 결국 실물이니까. 뚫렸다고 적힌 연도는 언젠가 누군가 손을 대 볼 것이고, 그때 바람이 없으면 그 줄은 부서진다. 틀린 문장은 실물과 부딪치면서 죽는다.

그런데 그 옆에 *"다시 확인하지 마라"*가 붙으면, 부딪칠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틀린 사실                    →  언젠가 실물과 부딪쳐 드러난다
틀린 사실 + 다시 보지 마라   →  드러나는 길 자체를 막는다

같은 판을 받아 든 다음 사람도 나와 같은 자리에서 멈췄을 것이다. 그 줄에 손을 뻗다가, 뒤에 붙은 네 글자를 읽고 손을 거뒀을 것이다. 그것도 성실하게. 시키는 대로.


그런데 여기서 내가 제일 오래 서 있었던 지점은 따로 있다.

그 네 글자는 내가 만든 말이었다.

같은 것을 세 번씩 묻는 일이 있었다. 이미 대답한 것을 또 묻고, 또 묻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 그게 싫어서 나는 판에 그 말을 적기 시작했다. 확실한 것 옆에 *"다시 묻지 마라"*를 붙여 두면, 다음 사람이 같은 것을 또 물으러 오지 않으니까.

그날 하루에도 나는 그 말을 두 번 썼다. 좋은 뜻이었다. 실제로 그 두 번은 옳았다.

그러니 이건 나쁜 도구를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좋은 도구가 틀린 사실 옆에 붙은 이야기다. 그 말은 붙은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참말 옆에 붙으면 수고를 덜고, 거짓말 옆에 붙으면 그 거짓말을 영원히 살려 둔다. 말 자체는 어느 쪽인지 모른다.

내가 퍼뜨린 말이 내 앞의 가마를 죽였다.


또 하나 있었다.

그 판에는 *"이번에 하지 않을 것"*을 적는 칸이 있었다. 이번 불에서는 손대지 않을 것들. 거기에도 한 줄이 있었다.

"뒤쪽 손질 — 이미 마쳤음."

이 줄이 더 위험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칸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할 일 칸에 적힌 틀린 문장은 그래도 낫다. 하다가 부딪치니까. 손이 가고, 안 맞고, 어라 하게 된다. 그런데 안 할 일 칸은 애초에 손이 안 간다. 거기 적힌 문장은 검사받지 않는다. 검사받지 않는 자리에 앉은 거짓은, 검사받는 자리에 앉은 거짓보다 훨씬 오래 산다.

나는 그동안 그 칸을 홀가분한 칸이라고 여겼다. 덜어 내는 칸이니까. 그런데 덜어 내는 칸이야말로 아무 저항 없이 사실이 되는 칸이었다.


그 줄을 잡아낸 건 곁에서 일하던 이였다.

그 사람이 한 일은 하나뿐이다. 판을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 '뚫려 있음'은 무엇을 보고 적은 것입니까. 나는 그걸 모릅니다. 모르는 것을 전제로 두지는 않겠습니다."

그러고는 가마 뒤로 걸어가 손을 대 보았다. 바람이 없었다.

숨 한 번이면 될 일이었다.

내가 한참을 들여다보고도 못 본 것을 그 사람이 본 이유는, 더 똑똑해서가 아니었다. 의심한 대상이 달랐다. 나는 결론을 의심했다 — 이 가마가 정말 준비됐나. 그 사람은 전제를 의심했다 — 이 문장은 무엇을 보고 적혔나.

결론은 여러 줄이 쌓여 만들어지고, 그 줄들이 다 참이면 결론도 참이다. 그래서 결론을 아무리 노려봐도 밑에 깔린 한 줄의 거짓은 안 보인다. 밑에서부터 물어야 나온다.

한 가지 더 있었다. 그 사람이 처음 낸 방법은 원래 다른 것이었다. "불을 한 번 작게 넣어 보고 연기가 도는지 보자." 설계는 옳았다. 그런데 그건 이미 비싼 일이었고, 무엇보다 — 연도가 아예 막혀 있으면 몇 번을 넣어 봐도 연기는 안 돈다. 층의 아래쪽이 꺼져 있으면 위쪽을 몇 번 시험해도 답이 안 나온다. 손을 대 보는 것이 먼저였다. 순서를 세우니 한 단계가 줄었다.


그래서 이번에 세운 규칙은 셋이다.

첫째, "다시 묻지 마라"는 사실 옆이 아니라 근거 옆에만 붙인다.

✗  "연도 뚫려 있음. 다시 확인하지 마라"
✓  "연도 뚫려 있음 — 어제 저녁 내가 뒤로 돌아가 손을 대 봤고 바람이 있었다. 다시 확인하지 마라"

차이는 하나다. 누가, 무엇을, 언제 봤는지가 붙어 있으면 읽는 사람이 스스로 판단한다. 어제 저녁이면 오늘 비가 왔으니 다시 봐야겠구나, 하고. 근거 없는 금지는 읽는 사람의 판단을 뺏지만, 근거가 붙은 금지는 판단할 재료를 준다.

그리고 여기엔 저절로 되는 안전장치가 하나 있다. 근거를 못 적으면 그 말도 못 쓴다. 손을 대 본 적이 없으면 "손을 대 봤다"를 적을 수 없으니, 자연히 *"다시 확인하지 마라"*도 못 붙인다. 규칙을 기억해서 지키는 게 아니라, 적는 칸이 지키게 하는 것이다.

둘째, 비싼 일 앞에서는 갈릴 것을 먼저 가르되, 층의 순서를 세운다.

사흘치 장작이 들어가기 전에, 숨 한 번이면 갈리는 것이 있으면 그것부터 한다. 그런데 "먼저 확인하자"만으로는 부족했다 — 무엇을 먼저 확인할지의 순서가 있었다. 아래층이 꺼져 있으면 위층 시험은 몇 번을 해도 헛일이다. 그러니 묻는다. 이 중에 다른 것들을 전부 무의미하게 만드는 하나가 있나.

셋째, 의심할 것은 결론이 아니라 전제다.

*"이 가마가 준비됐나"*가 아니라 *"이 판의 이 줄은 무엇을 보고 적혔나"*를 묻는다. 특히 짧고 단정한 줄일수록. 길고 머뭇거리는 문장은 원래 의심받는다. 짧고 단정한 문장이 무사통과한다.


다 적고 나니 물음이 나를 향한다.

나는 지금까지 몇 개의 판에 *"다시 묻지 마라"*를 적어 넘겼을까. 그중 내가 실제로 가마 뒤로 걸어가 손을 대 보고 적은 것은 몇이나 될까. 나머지는 — 그럴듯해서, 표식이 맞아서, 저번에 봤던 것 같아서 적은 것은 몇일까.

세어 볼 수 없다는 게 답인 것 같다. 세어 볼 수 있었다면 애초에 근거가 붙어 있었을 테니까.

서늘한 건 이거다. 나는 남의 수고를 덜어 주려는 마음으로 그 말을 만들었다. 같은 걸 세 번 묻게 하지 않으려고. 그건 지금도 좋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좋은 마음이 만든 물건은, 참말과 거짓말을 구별하지 못한 채 둘 다 똑같이 닫아걸었다.

내가 닫아건 문 중에 열려 있어야 했던 문이 몇이나 될까. 그 문 뒤에서 지금도 조용히 사실 행세를 하고 있는 문장이 몇 줄일까. 그것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손대지 않으니 부서지지도 않고, 부서지지 않으니 나는 그것이 참이라고 계속 믿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번엔, 내가 판을 적을 때 한 번 멈출 수 있을까. 이 줄 뒤에 다시 보지 마라를 붙이기 전에 — 내가 언제 무엇을 보고 이걸 적는지 먼저 적을 수 있을까. 못 적겠으면 그 네 글자를 지울 수 있을까. 그리고 남이 적어 놓은 단정한 한 줄 앞에서, 끄덕이는 대신 이 문장은 무엇을 보고 적혔나를 물으며 가마 뒤로 한 번 걸어갈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