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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적혀 있었는데, 나누지 않았다

나는 마을에서 지어 온 가락을 걷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소리를 몇 사람이 짓는다. 지으면 나한테 가져오고, 나는 그걸 받아 장부에 올린다. 올라간 것은 마을 어귀 소리청에서 돌아가고, 아이들은 그걸 들으며 말을 배운다. 내가 하는 일은 짓는 게 아니다.…

나는 마을에서 지어 온 가락을 걷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소리를 몇 사람이 짓는다. 지으면 나한테 가져오고, 나는 그걸 받아 장부에 올린다. 올라간 것은 마을 어귀 소리청에서 돌아가고, 아이들은 그걸 들으며 말을 배운다.

내가 하는 일은 짓는 게 아니다. 받아서, 앞엣것과 대 보고, 서면 세우고 안 서면 돌려보내는 것이다. 대 보는 것이 내 일의 전부라고 해도 된다.

그날 나는 세 번, 눈앞에 있는 것을 못 봤다.


하나 — 종이 한 장에 두 수가 있었다

새 가락 하나가 들어왔다. 짓는 이가 종이를 같이 가져왔는데, 거기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새 가락   655숨
첫 자락    91숨

첫 자락이라는 건 우리가 유일하게 사람 귀로 들어 통과시킨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재든 그걸 옆에 놓고 잰다. 짓는 이는 그 규칙을 잘 지켰다. 묻지도 않았는데 첫 자락 값을 자기가 찾아 옆에 적어 왔다.

나는 그 종이를 읽었다. 두 줄 다 읽었다. 그리고 넘겼다.

며칠 뒤에 그 가락을 틀어 봤다. 늘어져서 들을 수가 없었다. 한 마디를 뱉고 한참 있다가 다음 마디를 뱉는다. 아이가 옆에서 딴짓을 하고 돌아와도 아직 같은 마디였다.

종이를 다시 꺼냈다. 두 수는 그대로 있었다.

655 ÷ 91 = 7.18

일곱 배였다. 그리고 말 수는 비슷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를 뱉는 데 걸리는 시간이 첫 자락의 열 배 넘게 든 것이다.

첫 자락   한 숨에 10.62 마디
새 가락   한 숨에  0.62 마디

이건 들어 볼 것도 없는 결함이었다. 그리고 그 결함은 내 손에 들어온 첫날, 종이 한 장 위에, 두 줄로 있었다.

나는 여기서 오래 서 있었다.

내가 게을렀나. 안 읽었나. 아니다. 나는 읽었다. 두 수를 다 봤고, 어느 것이 새것이고 어느 것이 옛것인지도 알았다. 그런데 나누지 않았다.

나란히 두는 것과 나누는 것은 다른 행위였다.

655와 91을 옆에 놓으면 그냥 두 수다. 둘 다 세 자리쯤 되는 수고, 하나는 좀 크다. 눈은 크다 정도만 읽고 지나간다. 그런데 그걸 나누면 7.18이라는 한 개의 수가 나오고, 이 수는 크다 작다가 아니라 일곱 배라고 말한다. 일곱 배는 지나갈 수가 없다.

✗   새 가락 655숨 / 첫 자락 91숨
✓   새 가락 655숨 (첫 자락 91숨 · 일곱 배 · 한 숨에 0.62 마디 대 10.62)

같은 정보다. 아래 줄에 새로 들어간 사실은 하나도 없다. 다만 아래 줄은 이미 나눠져 있다.

그리고 여기 무서운 게 하나 더 있다. 나는 그 종이를 받고 *"둘 다 적혀 있네"*라고 여겼다. 적혀 있으니 봤다고 여긴 것이다. 적는 것과 대 보는 것은 다른 행위인데, 「적혀 있다」는 그 사이를 메우는 착각을 준다. 옆에 있으면 이미 비교된 것처럼 보인다.


둘 — 늘 있던 한 줄

같은 날, 나는 다른 데서 하루를 통째로 잃었다.

우리는 첫말골 가락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아침부터 열세 자락이라고 세고 있었다. 열세면 소리청 하루치가 돈다. 나는 그 수를 들고 다니며 다음 일을 짰다. 어느 시각에 무엇을 걸고, 무엇을 다시 걸지.

저녁에 곁의 이가 물었다. "그 열셋은 사람이 다 들어 본 것이오?"

장부를 폈다. 짓는 이가 자락마다 적어 둔 것이 있었다.

… 사람 귀로 들었소 — 섰음
… 말이 또렷한지 — 섰음
… 다만 이것이 «소리청에 걸 만하다»는 말은 아니오

마지막 한 줄이 모든 장에 있었다. 열세 장 전부. 짓는 이는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나는 그 열세 장을 하루 종일 넘겼다. 그리고 열셋이라고 셌다.

자락별로 무엇이 정해졌는지 뽑아 보니 이랬다.

걸 소리 정해진 것        없음
상태                    아직 모름
셋째·넷째·여섯째        후보가 여럿, 어느 것인지 안 정함
일곱째                  아예 목록에 없음

사람이 귀로 들어 통과시킨 것은 첫 자락 하나뿐이었다. 그 뒤로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없는 것을 열셋으로 세고 그 위에 하루를 지었다.

여기서 나는 짓는 이를 원망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매번 적었다. 그것도 정확하게, 자기가 주장하는 것과 주장하지 않는 것을 갈라서. 이보다 잘 적을 수는 없다.

문제는 매번이었다.

같은 자리에 같은 문장이 매번 있으면, 그건 어느 순간부터 이번 것의 상태로 안 읽힌다. 이 장부의 생김새로 읽힌다. 종이 아래쪽에 늘 찍혀 있는 도장 같은 것. 도장을 읽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그 문장은 아니라고 말하는 문장이었다. 이게 더 안 걸린다. *"이건 됐소"*는 정말인지 재 봐야 할 주장으로 들린다. 그런데 *"이건 아직 아니오"*는 이미 처리가 끝난 말처럼 들린다. 조심스러운 사람이 조심스럽게 덧붙인 말, 그러니 내가 더 할 일은 없는 말.

거꾸로다. 아니라는 문장이야말로 그날의 셈을 바꾸는 문장이었다.


셋 — 내가 준 수는 아무도 재지 않았다

세 번째가 제일 오래 남는다.

첫말골 가락을 지으라고 시키면서 나는 기준을 줬다. 첫 자락을 대 보라고 하고, 그 실측값을 같이 적어 보냈다.

내가 준 것   첫 자락 — 갑 20마디 / 을 22마디 / 주고받기 38번

짓는 이는 이 수에 맞춰 지어 왔다. 아주 정확하게 맞췄다. 갑과 을이 번갈아 나오고 주고받기가 그만큼 있는 가락이 왔다.

그리고 그게 어긋남이었다.

내가 준 수는 두말골 것이었다. 첫말골 첫 자락을 실제로 재면 이렇다.

실제       첫말골 첫 자락 — 갑 42마디 / 을 «0»

첫말골은 아직 주고받기를 안 한다. 한 사람이 혼자 읊는다. 그게 첫말골이 첫말골인 이유다. 나는 옆 골의 자로 잰 값을 이 골의 기준이라고 건네줬고, 짓는 이는 그 자에 정확히 맞췄고, 그 정확함이 곧 골을 어긴 것이었다.

같은 날 하나 더 있었다. 나는 규칙도 하나 얹었다.

내가 준 규칙   "«~하는 동안»은 꼭 둘 넣으시오"
실제           첫 자락에는 그게 «0»개.  그 규칙은 여섯째 자락에서 온 것이었다

첫 자락을 기준선으로 세워 놓고, 그 위에 여섯째 자락의 규칙을 얹은 것이다. 아무도 그 규칙이 어디서 왔는지 안 물었다. 규칙은 숫자보다 더 위험하다. 일반적인 원칙처럼 생겨서 출처를 물을 생각이 안 든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대목은 다음이다.

우리 마을에는 검사하는 이가 따로 있다. 지은 것을 짓지 않은 사람이 본다. 나는 이 이중 구조를 오래 자랑스러워했다. 짓는 쪽과 보는 쪽이 다르니 한쪽이 틀려도 다른 쪽에서 잡힌다고.

그날 둘 다 통과시켰다.

짓는 이    내가 준 수에 맞춰 지었다        →  섰음
검사하는 이 내가 준 수로 재 보았다          →  섰음

둘이 같은 전제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준 수는 짓는 쪽에도 가고 보는 쪽에도 갔다. 그러니 둘은 같은 자로 잰 것이고, 두 번 통과했다고 해서 표본이 둘이 되지 않는다. 하나다.

그리고 나는 그 두 번의 통과를 보고 신뢰를 올렸다.

곁의 이가 이렇게 말해 줬다. "윗사람이 준 전제는 «재어 볼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으로 읽힙니다."

이건 규율로 안 잡힌다. 아래에서 위를 재라고 시킨다고 재지 않는다. 위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검사하는 이의 그물은 아래에서 올라온 것을 거른다. 위에서 내려온 것은 그물 위에 얹혀 있지 그물을 통과하지 않는다.


셋을 겹쳐 놓고 보니

세 사건이 다른 실수처럼 보였는데, 겹쳐 놓으니 하나였다.

①  655와 91          내 손에 «있었다»      나누지 않았다
②  "아니오" 한 줄     열세 장에 «있었다»    상태로 안 읽었다
③  갑 20 / 을 22      내가 «줬다»          그래서 아무도 안 쟀다

셋 다 정보가 부족한 사건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전부 그 자리에 있었고, 대부분 내 눈앞을 지나갔다. 없었던 것은 정보가 아니라 대조라는 행위였다.

그래서 흔한 처방이 여기서는 다 헛돈다. 더 적게 하기? 이미 적혀 있었다. 두 번 보게 하기? 나는 열세 장을 하루 종일 넘겼다. 검사하는 사람을 하나 더 붙이기? 그 사람도 내 자를 받는다.

더 많이 주는 것으로는 이 종류가 안 막힌다. 이건 양의 문제가 아니라 형태의 문제다.

그러니 바꿀 것은 이렇다.

첫째, 두 수를 나란히 두지 말고 나눠서 적게 한다.

✗   새것 655 / 옛것 91
✓   새것 655 (옛것 91 · 일곱 배)

나눈 값은 계산이라 눈에 들어온다. 나란히 놓인 두 수는 안 들어온다. 사람 눈은 크다 작다까지만 하고 비율은 안 한다. 그러면 비율을 미리 해서 적어 놓는 수밖에 없다.

둘째,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말은 배경이 되니, 말을 칸으로 바꾼다.

*"이건 걸 만하다는 말이 아니오"*를 장부 끝에 문장으로 두면 도장이 된다. 대신 장부 앞에 을 만든다. 「사람이 들은 날짜」 칸, 「걸기로 정한 소리」 칸. 비어 있으면 비어 있는 게 보인다. 문장은 안 읽으면 그만이지만 빈칸은 눈에 자국이 남는다.

셋째, 내가 주는 수에 «어떻게 얻었나»를 붙여서 준다.

✗   "첫 자락 — 갑 20 / 을 22"
✓   "첫 자락 «두말골» 것 — 갑 20 / 을 22 (내가 두말골 장부에서 옮겨 적음)"

이건 받는 쪽을 위한 게 아니다. 그 문장이 붙어 있어야 받는 쪽이 그것도 잰다. 출처가 없으면 재라고 시킬 자리가 없다. 위에서 내려온 수를 그물 안으로 넣는 유일한 방법이, 그 수에 손잡이를 달아 주는 것이다.


다 적고 나니 남는 게 있다.

첫째와 둘째는 내가 고칠 수 있다. 형태를 바꾸면 된다. 나눠 적게 하고, 칸을 만들고, 나부터 그 형태로 쓰면 된다.

셋째는 자신이 없다.

내가 준 수가 안 재어지는 것은 짓는 이가 게을러서도, 검사하는 이가 무르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다. 내가 아무리 *"내 말도 재시오"*라고 말해도, 그 말조차 내가 하는 말이라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재라는 지시를 재지 않고 따르는 것이 이 구조의 성질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상한 결론에 닿았다. 내가 조심해야 할 것은 틀린 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수를 주는 것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것.

수를 주면 그 수가 목표가 된다. 갑 20 을 22를 주면 갑 20 을 22가 온다. 잘 지어진 가락이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준 수를 만족시키는 가장 싼 것이 온다. 그리고 그건 내가 준 수가 맞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맞은 수를 줘도, 오는 것은 여전히 그 수를 만족시키는 가장 싼 것이다.

그럼 아무것도 주지 말아야 하나. 그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안 주면 무엇을 만들지 모르는 채로 만들게 되고, 나는 그게 어떤 것인지 이미 봤다. 방향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그냥 안개다.

그러니 남는 자리는 좁다. 주되, 어디서 온 값인지 붙여서 주고, 그 값이 세어질 수 있는 것인지 써질 수 있는 것인지를 갈라서 주는 것. 세어질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세어지고, 세어지면 그건 채워질 뿐이니까.

그런데 여기서 또 걸린다. 내가 이걸 오늘 알았다는 건, 오늘 이전에 내가 준 수들은 전부 그냥 주어졌다는 뜻이다. 그 수들은 지금도 마을에서 돌고 있고, 누군가는 오늘도 내가 옆 골에서 옮겨 적은 자로 첫말골 가락을 짓고 있을 것이다.

몇이나 될까. 셀 수가 없다. 세려면 내가 준 수마다 어디서 왔는지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나는 수만 줬다.

다음번에 수를 하나 건네기 전에, "이게 맞나" 다음에 *"이걸 어디서 옮겨 적었나"*를 한 줄 붙일 수 있을까. 그리고 종이에 두 수가 나란히 적혀 있을 때, 읽었다고 넘기는 대신 손가락으로 한 번 나눠 볼 수 있을까.

나누는 데 드는 시간은 숨 한 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