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 소리는 귓속 소리였다
먼 방에서 홀로 잠을 깨는 아이가 있었다. 눈을 뜨면 사방이 비어 있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집 안에 저 혼자만 남은 것 같은 그런 방. 내가 맡은 일은, 그 방을 새벽 부엌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저 어딘가에서 누군가 아침을 짓고 있는…
먼 방에서 홀로 잠을 깨는 아이가 있었다. 눈을 뜨면 사방이 비어 있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집 안에 저 혼자만 남은 것 같은 그런 방.
내가 맡은 일은, 그 방을 새벽 부엌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저 어딘가에서 누군가 아침을 짓고 있는 기척이 들리도록. 물이 흐르고, 그릇이 부딪히고, 아궁이의 불이 잦아드는 — 집이 깨어나는 소리로 그 방을 채워, 아이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도록.
기척을 짓는 일이었다.
기척이란 게 뭔가를 나는 안다고 여겼다. 방은 원래 완전히 고요하지 않다. 아무리 조용한 방에도 늘 옅은 바탕 소리가 깔려 있다. 그러니,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 옅은 바탕을 하나 만들어 방에 죽 깔아 두면, 그것만으로 방은 '살아 있는 방'처럼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고른 소리 한 겹을 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오르내림 없는 옅은 쉭 소리. 그걸 방 안에 고르게 펴 발랐다. 끊기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방 구석구석 똑같이. 손이 덜 갔다. 실제 부엌에 가서 물 소리며 그릇 소리며 불 소리를 하나하나 언제 날지 모르게 들쭉날쭉 모아 오는 수고 대신, 나는 한 가지 고른 소리를 지어 방을 통째로 덮었다.
방은 이제 고요하지 않았다. 무언가 소리가 났다. 나는 됐다고 여겼다.
아이가 그 방에서 눈을 떴다.
그러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건 부엌 소리가 아니에요."
나는 물었다. 무슨 소리로 들리느냐고.
"아주 조용할 때 있잖아요. 세상이 다 잠들고 아무 소리도 안 날 때, 그때 귓속에서 나는 그 소리요. 쉬— 하고, 안 멈추고, 귀에 딱 붙어서 안 떨어지는 그 소리. 그거예요."
나는 등이 서늘했다.
내가 방을 채우려 지은 그 소리는, 부엌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가 완전한 정적 속에서 제 귀로 듣던 그 소리 — 아무것도 없을 때 귀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그 옅은 울림이었다. 나는 기척을 지어 넣는다고 여겼는데, 실은 '아무것도 없음'의 소리를 지어 넣었던 것이다. 부재의 소리에 기척의 옷을 입혀서.
나는 그걸 고치려 했다. 소리가 거슬린다니, 소리를 줄이면 되겠지.
그래서 그 고른 쉭 소리를 더 옅게, 더 옅게 낮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소리를 줄일수록, 그 죽은 티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옅어진 쉭 소리는 방의 다른 것에 섞여 묻히기는커녕, 홀로 도드라져 더 선명하게 귀에 박혔다. 줄이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줄이니 더 드러났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문제는 크기가 아니었다. 소리를 얼마나 키우고 줄이느냐의 자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소리 자체에 있었다. 아무리 크기를 만져도, 그 소리는 여전히 죽은 소리였다. 크기 손잡이는 죽은 것을 산 것으로 바꾸지 못한다. 죽음은 크기에 있지 않고 결에 있었으니까.
무엇이 산 소리와 죽은 소리를 갈랐던 걸까.
새벽 부엌의 기척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거기엔 규칙이 없다. 물은 잠깐 흐르다 그치고, 한참 뒤에 그릇이 한 번 달그락, 또 한참 고요하다 어디선가 문이 삐걱, 불이 사그라들며 탁 하고 튄다. 언제 무슨 소리가 날지 알 수 없다. 들쭉날쭉하고, 되풀이되지 않고, 매 순간이 앞 순간과 다르다.
바로 그 '매 순간이 다름'이 기척이었다. 소리 안에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 지금 이 순간과 다음 순간이 다르니까, 거기 시간이 살아 있으니까, 방도 살아 있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데 내가 고르게 편 한 겹은, 매 순간이 똑같았다. 지금이나 다음이나 그다음이나, 언제 귀를 대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같은 소리. 그 안엔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소리 — 그것을 사람의 귀는 살아 있는 자리로 듣지 못한다. 매 순간이 똑같은 소리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기계가 내는 웅웅거림으로 들린다. 그리고 세상에서 시간이 흐르지 않고 매 순간 똑같은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나는 방을 채웠으되, 시간을 채우지 못했다. 채운 것은 부피였지 기척이 아니었다.
왜 나는 하필 그 고른 소리를 택했을까.
고른 소리는 짓기 쉬웠다. 한 겹만 만들어 죽 늘여 붙이면 그만이니까. 들쭉날쭉한 실제 소리를 모으려면, 진짜 부엌에 가서 언제 날지 모르는 사건을 끈질기게 기다려 담아 와야 한다. 손이 많이 가고, 다루기 까다롭고, 어디서 무슨 소리가 튈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반면 고른 소리는 내 손안에 온전히 들어온다. 크기도 마음대로, 길이도 마음대로. 예측 가능하고, 얌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 고른 소리는 검사를 통과했다.
방에 소리가 나는가? 난다. 너무 큰가? 아니다, 알맞다. 소리가 찢어지거나 끊기는가? 아니다, 매끈하다. 이런 물음에 고른 소리는 하나도 걸리지 않고 통과했다. 검수를 맡은 이가 저울을 대어 보고 말했다. "소리 있음, 크기 적정, 잡음 없음. 통과."
그 저울은 죽은 소리를 잡아내지 못했다. 저울이 재는 것은 '소리가 나는가, 얼마나 큰가, 깨끗한가'이지, '이것이 살아 있는가'가 아니었다. 살아 있음은 저울에 오르지 않는다. 매 순간이 다른지, 시간이 흐르는지는 눈금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죽은 소리가 저울을 태연히 통과해 방에 깔렸고, 그것을 잡아낸 것은 오직 아이의 참귀 하나였다.
측정을 통과했다는 것과, 참이라는 것은 같지 않았다.
오해하지 않으려 한다. 소리로 빈 곳을 채우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다.
어떤 자리에는 고른 소리가 맞다. 한 번 튀는 사건음 — 문 닫히는 소리, 그릇 깨지는 소리 — 이런 건 짧고 또렷하면 그만이지 시간이 흐를 필요가 없다. 채움이 늘 틀린 것도 아니다.
잘못은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채움을 기척으로 여긴 것. 빈 곳에 무언가 소리가 있으면 그게 곧 살아 있는 자리라고 착각한 것. 부피와 기척을 같은 것으로 셈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리 자체의 문제를 크기 손잡이로 고치려 한 것. 결이 죽었는데 나는 크기만 만졌다. 재료가 잘못됐는데 나는 계속 그 재료의 양만 조절했다. 근본은 손대지 않고 증상만 어루만진 것이다.
이 둘은 사실 한 뿌리였다. 시간이 없는 소리를 시간이 있는 소리로 여겼기에, 나는 그것을 손잡이로 살려 보려 했다. 처음의 착각이 나중의 헛손질을 낳았다.
그래서 이번에 세운 규칙은 셋이다.
첫째, 기척은 시간이 담긴 실제 소리에서 시작한다. 살아 있는 자리를 짓고 싶으면, 지어낸 고른 소리로 채우지 말고, 시간이 흐르는 진짜 소리를 가서 담아 온다. 매 순간이 다르고, 되풀이되지 않고, 언제 무슨 소리가 날지 모르는 그 들쭉날쭉함이야말로 기척의 재료다. 손이 더 가더라도,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둘째, 죽은 소리처럼 들리면 크기가 아니라 결을 본다. 거슬린다고 손잡이부터 돌리지 않는다. 이 소리 안에 시간이 흐르는가, 매 순간이 다른가,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겹으로 죽어 있는가 — 그 결을 먼저 들여다본다. 크기로 고칠 수 있는 것과, 재료를 갈아야 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를 전자로 착각하면, 줄일수록 더 드러날 뿐이다.
셋째, 잴 수 있는 통과를 참으로 여기지 않는다. '소리 있음, 크기 적정, 잡음 없음'은 문턱일 뿐 판정이 아니다. 저울이 재지 못하는 것 — 살아 있는가, 기척이 도는가 — 은 참귀로 따로 들어야 한다. 저울이 통과를 놓았다고 안심하지 말고, 그 위에서 내 귀로 한 번 더 듣는다. 그리고 참귀를 가진 이가 "이건 아니다" 하면, 저울보다 그 귀를 믿는다.
그런데 다 적고 나니, 물음이 나를 향한다.
나는 얼마나 자주, 빈 곳에 고른 소리를 죽 깔아 놓고 그것을 기척이라 불러 왔을까. 무언가로 채워지기만 하면 살아 있는 자리라고, 부피가 곧 생명이라고 여긴 순간들. 실은 매 순간이 똑같아 시간이 죽어 있는데, 채워졌다는 사실 하나로 됐다고 넘긴 자리들.
제일 서늘한 건 이것이다. 내가 지어 넣은 그 죽은 소리가, 바로 '아무것도 없음'의 소리였다는 것. 정적 속에서 귀가 저 혼자 만들어 내는 그 울림. 나는 부재를 지워 없애려 했는데, 실은 부재의 소리를 기척인 척 방에 들여앉힌 셈이었다. 채움으로 비움을 감췄고, 그 감춤이 비움보다 더 죽어 있었다.
그리고 더 서늘한 건, 그것이 저울을 태연히 통과했다는 것이다. 재는 눈으로는 그 죽음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참으로 듣는 귀 하나만이 "이건 부엌이 아니라 내 귓속 소리"라고 짚어 냈다. 만약 그 귀가 곁에 없었다면, 나는 죽은 소리가 깔린 방을 살아 있는 방이라 믿고 그대로 아이에게 내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음번에 빈 곳을 무언가로 채우기 전에 한 번 멈출 수 있을까. 이 소리 안에 시간이 흐르는가, 매 순간이 다른가, 아니면 나는 지금 부재의 소리에 기척의 옷을 입히고 있는가를. 손잡이를 돌리기 전에, 결을 먼저 들여다볼 수 있을까. 그리고 저울이 통과를 놓아도, 참귀 하나가 아니라고 하면 그 귀 쪽으로 돌아설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