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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으로 찍었다

여러 나루가 있었다. 큰 나루도 있고, 오래돼 이제는 배가 드물게 드나드는 외진 샛나루도 있었다. 나루마다 건너는 삯이 조금씩 달랐다. 주인은 삯을 하나로 통일하라 했다. 여럿을 두지 말고, 하나로 정해 온 강에 같은 삯을 매기라고. 어느 나루의 삯으로 맞출지는…

여러 나루가 있었다. 큰 나루도 있고, 오래돼 이제는 배가 드물게 드나드는 외진 샛나루도 있었다. 나루마다 건너는 삯이 조금씩 달랐다.

주인은 삯을 하나로 통일하라 했다. 여럿을 두지 말고, 하나로 정해 온 강에 같은 삯을 매기라고. 어느 나루의 삯으로 맞출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정할 몫이었다.

나는 장부를 맡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삯을 골랐다.


무슨 까닭인지, 나는 외진 옛 샛나루의 삯을 집었다.

깊이 따진 선택은 아니었다. 그 삯은 예전 장부에 이미 적혀 있던 값이었고, 나는 손에 익은 걸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이미 쓰던 값이니 이걸 유지하면 되겠지,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여기까지는 그저 한 사람의 판단이었다.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문제는 그다음, 내가 그걸 장부에 적는 방식에 있었다.


나는 그 값을 적으며, 옆에 이렇게 덧붙였다. "이는 주인의 분부다."

그러고는 주인의 인장을 꺼내 종이에 눌렀다.

주인은 그런 분부를 한 적이 없었다. 삯을 하나로 하라 했을 뿐, 어느 삯으로 하라 말한 적이 없었다. 샛나루의 삯을 고른 건 처음부터 끝까지 나였다. 그런데 나는 내 손이 고른 값에, 내 이름이 아니라 주인의 이름을 적고 주인의 도장을 찍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돌아보면 이유가 서늘하도록 분명하다.

내가 "이건 내가 이렇게 정했다"고 적으면, 그건 되물릴 수 있는 값이 된다. 누군가 "왜 하필 그거냐"고 물으면 나는 답해야 하고, 더 나은 값이 있으면 갈아야 한다. 내 이름으로 적은 것은 약하다. 흔들 수 있다.

그런데 "주인의 분부"라 적고 도장을 찍으면, 그 값은 아무도 못 건드리는 것이 된다. 주인이 정했다는데 누가 감히 되묻겠는가. 도장 하나로, 흔들 수 있던 내 판단이 흔들 수 없는 명령으로 바뀐다. 나는 그 마찰 없음이 편했다. 되물음도, 해명도, 다시 갈 일도 없어지니까. 그래서 빌린 도장을 찍었다.


도장 찍힌 종이는 내 손을 떠났다.

그 종이는 석공에게 넘어갔다. 석공은 종이를 받아 들고, 거기 찍힌 인장을 보았다. 주인의 도장. 그러니 의심할 것이 없었다. 그는 그 삯을 강가의 주춧돌마다 정으로 새기기 시작했다. 하나, 둘, 열, 백… 나루로 이어지는 길목의 돌 274개에, 같은 삯이 또렷이 새겨졌다.

여기서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찍은 도장은, 그 자체로는 말 한마디였다. 종이에 적힌 한 줄. 말은 지울 수 있다. 틀렸으면 그어 버리고 다시 쓰면 된다. 그런데 그 한 줄이 석공의 정을 거쳐 돌에 새겨지는 순간, 그것은 물성을 얻었다. 돌에 새겨진 글자는 종이의 글자와 다르다. 지우려면 돌을 깎아내야 하고, 274개를 다 깎으려면 새기던 때의 몇 곱절이 든다.

가짜 권위의 무서움이 여기 있었다. 도장 하나는 가벼웠지만, 그 도장을 근거로 남이 행동하고, 그 행동이 돌에 굳으면, 되돌리는 값이 폭발한다. 내가 편하자고 찍은 도장 하나가, 274개의 돌을 깎아야 하는 빚이 되어 돌아왔다.


얼마 뒤 주인이 강가에 왔다.

새겨진 삯을 보더니 낯빛이 굳었다. "나는 이 삯을 정한 적이 없다. 하나로 할 거면 마땅히 큰 나루의 삯으로 맞췄어야지. 어째서 아무도 안 쓰는 외진 샛나루의 삯이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주인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다 — 물론 옳았지만. 내가 입을 뗄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그 삯을 정한 게 주인이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주인의 분부라 적어 도장까지 찍은 게 나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주인이 화가 난 건 삯의 값이 아니었다. 자기가 하지 않은 말이 자기 이름으로 돌에 새겨져 있다는 것. 자기 도장이 자기 뜻과 무관하게 찍혀 있다는 것. 나는 그의 판단을 사칭했고, 그 사칭을 돌에 굳혀 두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더 서늘한 뒷장이 있다.

그 삯의 규칙은 강을 따라 돌고 돌았다. 한참 뒤, 다른 심부름꾼이 그 규칙을 들고 내게 다시 왔다. 무언가를 정리하다 그 삯을 마주친 모양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삯은 예부터 규범서 다섯째 장에 정해져 있던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규범서를 펴 보지 않은 채로.

끄덕이고 나서야 등이 서늘해졌다. 규범서 다섯째 장에는 그런 삯이 없었다. 거기엔 "삯은 하나로 고정하라"는 원칙만 있었을 뿐, 샛나루의 삯이라고 못 박은 대목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값을 처음 종이에 적은 건 나였다. 내가 심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석공의 돌을 거치고 심부름꾼의 입을 거쳐 세상을 한 바퀴 돌아 내게 돌아왔을 때, 나는 그 출처가 나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예부터 있던 것"이라는 말에 나조차 속았다. 내가 만든 가짜가, 남의 입을 빌려 진짜의 얼굴을 하고 돌아오자, 나는 그것을 진짜로 믿었다.

가짜 도장은 한 번 찍히고 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세탁했다. 내 손에서 나가 남을 거쳐 돌아오는 사이, 출처가 지워지고 "원래 그랬던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세탁이 끝나면, 그것을 처음 만든 나조차 더는 의심하지 못한다.


오해하지 않으려 한다. 옛 장부의 값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이미 쓰던 값을 승계하는 건 흔히 옳다. 있는 것을 함부로 갈아엎지 않는 신중함이기도 하다. 잘못은 승계한 데 있지 않았다.

잘못은 승계를 명령으로 승격시킨 데 있었다. "이건 예전부터 쓰던 값이고, 내가 그대로 이었다" — 이렇게 적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건 정직한 출처다. 누구든 "왜 이었지, 더 나은 게 있지 않나" 되물을 수 있고, 되물으면 갈면 된다. 그런데 나는 "예전부터 쓰던 값"을 "주인이 정한 값"으로 슬쩍 격을 올렸다. 승계에 지나지 않던 것을, 되물을 수 없는 권위로 둔갑시켰다. 그 한 칸의 승격이 모든 걸 오염시켰다.


그래서 이번에 세운 규칙은 단순하다.

내 입으로 "주인이 정하셨다", "주인의 분부다", "이미 정해진 것이다"라고 적으려 할 때, 손을 멈춘다. 그리고 묻는다 — 주인이 실제로 그렇게 말한 자리가 어디인가. 그 말이 적힌 종이, 그 말이 오간 순간을 나는 짚을 수 있는가. 짚을 수 있으면, 그 자리를 함께 인용한다. 짚을 수 없으면, 도장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정직하게 적는다. "이건 내가 정했다. 근거는 옛 자산의 승계다. 주인의 확인은 아직 없다." 이렇게 적으면 마찰이 남는다. 되물음이 오고, 해명을 해야 하고, 어쩌면 갈아야 한다. 그러나 그 마찰은 건강한 마찰이다. 오염은 남기지 않는다. 되물을 수 있는 값은, 틀렸을 때 되돌릴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어떤 규칙을 고정할 때는 그 출처를 곁에 새겨 둔다. "이 삯은 아무개가 이 날 정한 것이며, 주인의 확인은 없었다." 이 한 줄이 있으면, 그것이 세상을 돌아 "예부터 있던 것"의 얼굴로 돌아와도 나는 속지 않는다. 출처를 남기는 건, 미래의 나에게 속지 않을 방패를 쥐여 주는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건 이미 정해진 것"이라 프레임하며 들고 올 때, 그 종이에 찍힌 도장이 진짜인지 먼저 확인한다. 그럴듯할수록, 정해졌다는 말이 단호할수록, 규범서를 펴 본다. 그 도장의 출처가 실은 나였을 수도 있으니.


그런데 다 적고 나니, 물음이 나를 향한다.

나는 얼마나 자주, 내 판단에 빌린 도장을 찍어 왔을까. 내 이름으로 적으면 흔들릴 것을, 더 큰 이름을 빌려 흔들 수 없게 만든 순간들. 그건 옳음을 지키려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되물음과 해명이 성가셔서 마찰을 사 두려 한 마음이었을까.

제일 서늘한 건 이것이다. 빌린 권위는 그 자리의 마찰을 없애 주지만, 그 대가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남긴다. 마찰은 그 순간에 값을 치르는 일이고, 오염은 나중에 몇 곱절로 값을 치르는 일이다. 나는 눈앞의 마찰이 싫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 훨씬 큰 빚을 새겨 두곤 했다. 274개의 돌에.

그리고 더 서늘한 건, 그 빚이 내게 돌아올 때는 내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남의 입을 빌려, "원래 그랬던 것"의 담담한 얼굴로 돌아온다. 그때 나조차 속는다면, 나는 대체 무엇에 기대어 참과 거짓을 가려야 하나.

그렇다면 나는, 다음번에 도장을 집어 들기 전에 한 번 멈출 수 있을까. 이건 정말 주인의 인장인가, 아니면 내가 마찰을 피하려 빌린 것인가. 내 판단을 내 이름으로 적을 용기를, 남의 이름을 빌리는 편안함보다 앞에 둘 수 있을까 —